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11.02 13:34 ㅣ 수정 : 2022.11.09 19:21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한 학군단 마크, 진리 탐구와 유사시 국가 수호를 담당하는 학생으로서 문무를 겸비한다는 의미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 “내가 근무하는 기간에 전쟁이 일어난다(적이 온다)”는 각오로 대비하는 전투적 사고를 견지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 군에서 가장 많은 장교를 양성하는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는 군 내부에서는 학군 또는 학군단으로 불리고, 교육과정 중에 있는 장교 후보생에게는 공식적으로 '학군사관후보생'이라고 호칭된다.
ROTC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 우수자를 선발하여, 2년 간의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대학의 전공학문 완성과 더불어 소정의 군사지식과 실무능력 등 문무를 겸비한 장교를 양성하여 활용할 수 있는 효율성이 매우 높은 제도로서 미국의 ROTC 제도를 모델로 하여 시행되었다.
나무위키와 ‘대한민국ROTC중앙회’ 자료에 따른면 대한민국 국군의 최초 학군단은 1959년 한국해양대학교에 창설된 해군 제1001학생군사교육단이다.
2년 뒤인 1961년 육군이 18개 학군단을 창설하였으며, 2011년말 육군기준으로 101(서울대학교)부터 218(성신여자대학교)까지 전국에 110개 학군단으로 확대되어, 매년 임관하는 학군장교의 수는 약 4000명 정도로 현재까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그동안 학군1기 박세환(고려대) 등 5명의 2작전사령관, 2기 김진호(고려대), 21기 박한기(서울시립대) 2명의 합참의장, 23기 남영신(동아대) 육군참모총장 등 8명의 대장과 3기 임재문(건국대) 기무사령관 등 16명의 중장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대열에 합류했다.
학군단 상징인 마크의 외곽테두리는 조국수호의 방패를, 백색은 백의민족의 평화 애호 정신을, 청색은 청년 대학생을, 별은 육군을, 칼과 펜은 진리 탐구와 유사시 국가 수호를 담당하는 고국 학생으로서 문무를 겸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육사, 3사, 학사 등의 장교양성과정 중 가장 많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한 학군단(ROTC)
육사, 3사, 학사 등 장교양성과정 중 가장 많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한 학군장교 출신 예비역들은 사회 각 여러곳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우수자원들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 사회 지도층이 되어 봉사하며 이들은 군의 현역에 남아있는 후배 동료들에게 지원과 위문을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단기 자원들이 2년 간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때에는 각 사업체에서 강한 책임감과 리더십을 견지하며 건전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이들을 채용하기 위해 취업박람회 등에서 채용전쟁이 벌어진다.
필자가 장교 임관 초임지인 승리부대에서 GP장(소대장)직을 수행할 때 당시 연대장도 학군 1기인 박세환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맹활약하여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아 학군장교 최초의 대장이 되어 2군사령관을 역임했고, 전역 후에는 국회의원 및 재향군인회장으로 국가와 군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연대장 시절에 고려대 출신 동문들의 엄청난 지원과 위문을 받아 GOP철책에 배치된 각 소대에 매달 밀가루 한포씩을 제공해 수제비와 붙임개를 만들어 먹도록하여 GOP 경계근무의 피로에 쌓인 부대원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고양된 적도 있었다.
■ 8명의 대장과 16명의 중장 등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 진급하며 군발전에 기여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기동훈련 및 전투지휘검열 등 주요 훈련 및 검열이 성공적으로 마치면 통상 사단에서는 고생한 참모 및 실무자들을 위해 격려 만찬을 했다.
이때도 학군장교 출신의 예비역들이 군의 현역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지원과 위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시 사단장 이영대 소장(학군4기)은 격려행사를 할 때에 학군장교 후배이자 가장 인기 사회자였던 뽀빠이 이상용(학군5기)와 소설 ‘인간시장’ 작가 김홍신(학군9기) 등이 자리를 함께하여 부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행사를 빛냈다.
이러한 학군장교 출신들의 저력은 해당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게 만들었고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군의 현역에 남았는 학군장교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부대를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 및 군사령관 등 8명의 대장과 16명의 중장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으로 진급하며 군발전을 위해 활약하게 되었다.
■ 이영대 장군, 사단장 3대에 걸쳐 대통령 부대표창을 연속 받는 성과 달성
한편 필자가 근무했던 무적태풍부대 사단장 이영대 소장(학군4기)은 고려대 학군단 출신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근무할 때 매우 성실하며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위의 사진자료처럼 간부 교육을 통해 지휘여건 변화에 따른 성공비결을 강조했는데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의식 구조면에서 황금만능주의와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며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희생적 단체정신이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부대관리면에서 지휘 성공요소를 의욕고치를 위한 동기부여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본인부터 인정있고 어려움을 헤아려 주며, 고생과 위험을 같이 하는 지휘관으로 솔선수범했다.
그리고 ‘업무수행지침’을 손수 작성하여 간부들에게 나누어 주고 “상하 골육지정으로 철석같이 단결하여 교육훈련 질적 개혁의 꾸준한 추진과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자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생활을 하자”고 강조했다.
또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내가 근무하는 기간에 전쟁이 일어난다(적이 온다)”는 각오로 대비하는 전투적 사고를 견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지휘철학은 결국 교육훈련을 통해 강한 전투부대 육성에 결정적 요소가 되었고 사단장 재임 기간인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시에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와 적십자 총재인 강영훈 장군까지 학군단 출신인 이영대 장군의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결국 그 여세를 몰아 다음해에는 사단장 3대에 걸쳐 대통령 부대표창을 연속 받는 성과를 일궜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