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9)] 유니버셜이라는 세계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2.24 05:15 ㅣ 수정 : 2024.03.15 11:03

20대 가난한 배낭여행자 시절, 오사카 유니버셜의 비싼 가격에 발길을 돌렸던 추억 생각나
우리는 왜 사진찍기에 집착할까?...행복은 찰나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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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파란 지구 형상의 유니버셜 랜드마크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유니버셜의 랜드마크. 커다랗고 파란 지구 형상, 전 세계 4곳 밖에 없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아우르는 환상의 왕국. Veni Vi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드디어 싱가포르에 온 목적을 이뤘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와우! 얘들아~ 유니버셜이야. 우리가 이것 보러 여기까지 왔잖니. 넘 멋지지 않아?” 대답이 없어 아이들을 돌아보았더니 입안에 똥을 머금은 듯 부루퉁하게 표정이 썩어 있었다.

 

엄마의 불편한 여행에 잔뜩 열이 받은 얼굴이었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걸어서 버스를 타고 비보시티에 내려 센토사 익스프레스로 갈아타고 또 빗길을 뛰어 유니버셜에 왔던 것이다.

 

여행 전 미리 일러두었다. “우리에게 편안한 여행은 없다. 우리는 최대한 현지인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택시 이용은 최소화 할 것이다. 하루에 만보 걷기는 기본일 것이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여행의 일부이다. 알겠나? 동의하지 않으면 싱가포르 여행은 취소한다!”

 

후임병에게 명령하듯 표정에 각을 잡았다. 아이들은 여행이 취소될까봐 일단은 신속히 고개를 끄덕이며 토를 달지 않았다. 태세전환을 위해 “여기 기념품 샵이 엄청나게 크데. 인형이랑 학용품이랑 쇼핑도 잔뜩 해야지?“ 굳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큰애는 잽싸게 “얼마까지 사게 해줄거야?” 라고 물었지만 나는 못들은척 걸음을 옮겼다. 센토사 섬에 위치한 유니버셜은 거대한 헐리우드 영화 테마파트로 로스트 월드, 이집트, 쥬라기 공원, 슈렉, 할리우드 등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중간중간 어트랙션이 있어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지루하지 않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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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미국에 2곳, 싱가포르, 오사카 전 세계에 4곳의 유니버셜 테마파크가 있다. 20대 가난한 배낭여행자 시절 오사카에 갔다가 유니버셜 앞을 지나갔었는데 비싼 가격에 놀라 대문만 한참 바라보다가 떨어지지 않던 발길을 돌렸던 첫사랑 같던 유니버셜.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남, 20년 후의 해후. 나는 혼자 코 끝이 시큰했다. 아득한 망상에 빠져 꿈꾸듯 걷고 있는데 “엄마! 배고파.” 소리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 비싸다. 나가서 맛있는 것 사줄게.”

 

Ancient이집트로 갔다. 케로베로스가 대열로 호위하고 투탕카멘의 근엄한 얼굴이 압도적이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지만 각각의 섹션에서 3분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다리아파. 엄마, 목 말라, 엄마 밥은 언제 먹어? 엄마 기념품 점에 언제가?”를 연발하여 내 표정을 점점 굳어가게 하였다.

 

사실 거리도 워낙 넓은데다 탈거리 볼거리는 넘처나고 아이 둘 챙기랴, 가방 두 개 짊어지고 중간중간 사진도 찍어야 하지 혼자서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익스프레스 패스를 끊어야하나를 몇 번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론 구매하지 않은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

 

둘째는 키 제한 때문에 탈 수 있는 기구가 한정적이었고, 첫째는 여행 전 할머니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은 탓에 놀이기구를 타면 심장마비에 걸릴 수도 있다며 아무것도 타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기구는 괜찮을거라고 설득하여 유아용 어트렉션을 한 번 탄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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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다리가 아파 일단 앉아야 해서 눈에 보이는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잠시 쉬었다가 슈렉월드로 갔다. 슈렉의 성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너는 슈렉, 나는 피오나, 애들과 장난치며 실 없이 히히덕거렸다. 3D영화도 관람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해서 3번을 보았다.

 

하루 만에 돌아보기에는 무리인 듯했다. 여유 있게 보려면 세 번은 더 와야 될 것 같았다. 제일 많이 한 행위는 사진 찍기. 최소 백 장은 넘게 찍은 듯하다. 사람들은 왜 사진찍기에 집착할까?

 

시간이 유한한것을 알기 때문이다. 행복은 찰나에 지나지 않고 현재는 지체 없이 과거로 흘러간다. 우리는 소멸해가는 주변의 애틋한 것들을 붙들어 두고 싶은 것이다. 마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사탕처럼.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소중한 것들을.

 

그러고보니 제일 오래 머문 곳이 기념품 샵이었다. 아이들에게 미니언즈 휴대용 물병과 미니언즈 티셔츠를 사주고 도망치듯 출구를 빠져나왔다. 어서 호텔의 침대로 뛰어들고 싶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돌아오는 길에는 그랩을 호출했다. <10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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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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