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은행 10대 뉴스] 키워드 ‘피벗’·‘고환율’·‘탄핵 정국’
비상계엄發 탄핵 정국에 금융시장 ‘출렁’
한국은행, 3년 2개월 만의 통화정책 전환
우리은행 부당대출·홍콩 ELS 등 금융사고 반복
4대 은행 중 3곳 은행장 교체…‘쇄신·변화’ 바람
[뉴스투데이=김세정 기자] 올해 국내 금융시장은 트럼프 리스크로 인한 고환율, 탄핵 정국 여파 등 대내외 변수가 늘며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탄핵안 가결로 변동성이 일부 완화되며 금융시장도 안정을 되찾을지 관심이 높지만, 여전한 정치적 불확실성과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1400원대 고환율이 걸림돌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 10월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11월엔 금리 동결 전망이 우세했지만 연속 0.25%p 깜짝 인하를 결정했다.
두 차례 연속 내린 여파로 은행권의 예·적금 금리도 쑥쑥 내려가는 중이다. 그러나 낮아진 기준금리에도 대출금리는 역주행하며, 올해도 은행권은 이자장사 비판을 면치 못했다.
여기에 은행들의 고질적인 금융사고가 올해도 반복됐고,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태까지 터지며 금융 소비자들의 불신이 깊어졌다. 결국 5대 은행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은행장들이 대거 교체됐다.
다음은 <뉴스투데이>가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은행권 10대 뉴스들이다.
■ 비상계엄發 탄핵 정국에 금융시장 ‘출렁’
2024년 12월 3일. 한 밤중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사태 직후 경제·금융 수장들은 수시로 회의를 열어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불안정한 환율 흐름에 민감한 금융지주 수장들도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실시간 모니터링에 나섰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에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순 없었다. 트럼프 발 강달러에 상승 압력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계엄 사태로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장기 고착화 우려까지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은행주도 계엄 여파에 휘청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틀 동안 은행업종 대장주로 꼽히는 KB금융은 15.2% 급락했고,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각각 11.7%, 9.6% 떨어졌다. 계엄 여파로 밸류업 정책 동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과 경제 전문가들은 과거 두 차례 탄핵 사태를 참고할 때, 이번 탄핵 정국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탄핵 관련 갈등이 길어지면 경제적인 타격도 커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 3년 2개월 만의 피벗…‘경기 부양’ 나선 한국은행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0월 3년 2개월 만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섰다.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해온 한은이 통화 긴축 기조를 끝내고 완화 기조로 전환한 것이다.
10월과 11월 각 0.25%p씩 두 달 연속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기준금리는 연 3.50%에서 3.0%로 조정됐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를 낮춘 건 2008년 10월부터 금리를 연속으로 인하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한은의 피벗 결정은 내수 침체 우려 때문이다. 기준금리 하향 조정과 관련해 한은 금통위는 “환율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물가상승률의 안정세와 가계부채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 압력이 증가했다”며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의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내부통제 강화 외쳤는데…금융사고 은행 비중 60%↑
금융 소비자들이 1금융권으로 부르는, 신뢰하고 돈을 맡겨야 할 주요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들에서 올해도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금융사고 10건 중 약 6건은 은행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7년 동안 국내 전체 금융업권에서 발생하고 있는 횡령과 배임 등 금융사고 규모는 6600억원대로 조사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264건, 발생금액은 4097억500만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 금융권 전체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발생금액의 61%에 해당한다. 은행에서만 금융권 절반 이상의 사고가 터진 것이다.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은행권에서는 ‘내부통제 강화’가 내내 화두였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올해 처음 책무구조도를 제출했고, 조직 개편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누적된 불신을 해소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 홍콩 ELS 불완전 판매에 ‘깊어진 불신’
올해 시작부터 금융권을 뒤흔든 건 홍콩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다.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손실이 확정된 계좌를 기준으로 손실 금액은 4조6000억원에 달한다. 손실이 확정된 계좌의 원금은 10조4000억원으로, 투자금의 44.2%가량이 날아간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홍콩 ELS 사태 해결을 위해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판매사의 기본 20~40% 책임 배상과 함께 불완전판매 및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최대 45%p까지 가감하는 내용이다.
투자자별 케이스를 따져보겠다는 판매사와 100% 원금 배상을 주장하는 피해 투자자들이 집단 소송전을 예고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 압박에 은행권이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본격 나서며 자율배상에 속도가 붙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투자자의 80%가 자율배상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 금융지주 역대급 실적…내수 절벽에도 ‘나홀로 호황’
주요 금융지주들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4분기 당기순이익 전망치는 총 2조430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4분기의 1조3421억원보다 80% 넘게 증가한 수치다.
연말 내수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지만 은행들은 높은 예대금리차를 바탕으로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뒀다. 금융지주들의 주력 계열사인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에 따라 대출금리에 반영되는 가산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리면서 여·수신 금리 격차가 확대된 영향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는 지난 7월 0.43%p에서 10월 1.04%p로 석 달 연속 늘어 배 이상 껑충 뛰었다.
■ ‘내부통제 실패’ 책임…차기 은행장 ‘쇄신·변화’
역대급 실적에도, 올해 4대 시중은행은 신한은행을 제외하고 은행장이 모두 교체됐다. 금융사고 얼룩을 지우려면 강력한 쇄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특히 우리은행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으로 곤혹을 치루고 있다. 검찰은 손 전 회장이 지난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친인척과 관련된 법인과 개인사업자에게 승인된 4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에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차기 우리은행장에는 정진완 현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이 내정됐다. 우리금융지주 이사들로 구성된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자추위)는 조직 쇄신과 세대 교체, 영업 경쟁력 강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행장 선임 절차를 진행했다.
국민·하나은행장에는 그룹 내 현직 비은행 자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발탁됐다. 이환주 현 KB라이프 대표이사는 국민은행장으로, 이호성 현 하나카드 대표이사는 하나은행장으로 각각 이동한다. 정상혁 현 신한은행장은 2년 연임에 성공했다.
■ 가계부채 2004년 이후 최대 폭 증가
지난 여름 집값이 다시 들썩이는 조짐을 보이자,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이미 올해 대출 목표치를 넘은 상황이었다.
올해 8월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2004년 통계 편제 이후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집계한 가계대출 동향을 보면, 지난 8월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 대비 9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월별 증가액 기준으로 2021년 7월(15조3000억원) 이후 최대치다. 주담대가 8조5000억원, 기타대출(신용대출 등)이 1조3000억원 각각 늘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9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 역시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최대치이며, 월별 기준 역대 9번째로 큰 증가폭이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 문턱을 높였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1주택자의 투기 목적이 아닌 정상적인 주택 거래 수요까지 틀어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복현 금감원장은 1주택자라도 자녀 결혼 목적 등 다양한 실수요자들이 있는 만큼 은행이 기계적으로 대출을 금지하는 것에 우려 입장한다는 입장을 냈다. 은행들은 투기 목적과 실수요 대출을 명확히 가르기 쉽지 않아 혼란스럽다면서도, 실수요자 전담 심사팀을 구성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 오락가락 대출 정책에 ‘시장 혼란’ 가중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아 시장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먼저 금융감독원이 ‘은행 개입’을 시사한 반면,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자율적인 가계대출 관리’를 강조해 엇박자 논란이 일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가계부채 증가세와 관련해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며 “은행에 대한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은행권이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유주택자의 수도권 전세대출 제한 등 규제책을 경쟁적으로 펼쳤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메시지 정리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과거처럼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갖고 통제하기 보다는 개별 금융회사가 리스크 수준, 차주의 특성 등을 평가해 투기적 수요를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어느 부분이 강조되는지에 따라 메시지 충돌이나 혼선이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전체 흐름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 양 기관 인식 자체에 차이가 없다”면서 “앞으로는 확고한 가계대출 관리 기조 아래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조율해 메시지를 내겠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일각에선 금감원장의 ‘관치 발언’이 도를 넘었고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일자 금융위가 금감원에 대한 제동 걸기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이자 장사 지적에 이은 상생금융 압박
올해 금융사들이 호실적을 거두며 이자 장사 논란도 커졌다. 금융권을 향한 상생금융 요구도 더 거세진 모양새다.
여야 정치권은 22대 국회 개원 한 달 만에 은행권의 서민금융 출연비율을 높이고 중도상환수수료 폐지를 유도하는 내용의 ‘은행 고통 분담’ 법안들을 대거 발의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역시 보고서를 내고 서민금융 지원을 강조했다. 김현열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세를 보였지만 취약 계층의 부채 상환 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자영업자의 연체일수와 연체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선 금리 인하 기조에서 향후 수익성 악화를 예상하고 있어, 대출 산정체계 공개나 중도상환수수료 폐지 등에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등 상생금융 방안을 준비 중이다.
■ 은행권 경쟁 촉진…iM뱅크 탄생·제4인터넷은행 출범 속도
올해는 기존 은행권 중심의 과점 체제를 해소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들이 추진됐다. 첫 타자로 DGB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했고, 제4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위한 준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5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인가했다.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2년 만에 새로운 시중은행이 탄생한 것이다. 대구은행은 6월부터 iM뱅크로 이름을 바꿔 영업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1분기 중 신규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서를 받고, 2개월 이내에 예비인가 심사 결과 발표와 본인가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인터넷은행은 2017년 출범한 케이뱅크·카카오뱅크와 2021년 출범한 토스뱅크 3곳이다.
금융당국이 계획한 일정대로라면 내년 상반기 중 거의 4년 만에 새 인터넷은행이 금융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특히 제4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과의 차별성이 심사에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어서 은행권 ‘메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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