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1)] 부대 방문한 대통령 후보들의 진면목 ②총리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벽창호 강영훈 장군(하)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11.15 18:44 ㅣ 수정 : 2022.11.15 18:44
최고의 국무총리로 선정된 강영훈 장군, ‘총리의 권한과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한 사람’으로 평가돼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영훈 장군은 7년의 재임기간 중에 무적태풍부대를 인상적으로 격려 방문했던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1997년 이후 세종연구소 이사장직을 맡아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로 각인된 그는 유엔 환경계획 한국위원회 총재, 인촌상 운영위원회 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초대회장 등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후엔 전시작전통제권환수 반대 운동에 나서는 등 사회원로로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총리에서 퇴임한 뒤 평소에 자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전직 총리가 버스를 타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라고 말했다는 후문이었으며 늘 국민과 가까이에서 함께하다 2016년 5월10일 95세로 타계하였다.
■ 행사를 준비하는 실무자의 고생은 생도시절 외쳤던 ‘극한 속의 여유’란 구호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순간
무적태풍부대의 1992년 연말은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생도시절 각종 힘든 훈련을 하면서 외쳤던 ‘극한 속의 여유’란 구호의 의미를 절로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해 12월에 실시되는 대통령선거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대법원장, 적십자사 총재 강영훈 장군까지 국가의 거물급 중요 인사들의 격려 방문은 부대의 자긍심도 높힐 수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행사를 준비하는 실무자에게 죽을 맛을 느끼는 고생이었다.
마지막 방문자인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를 영접하기 2일전인 12월28일에 전설적인 삶을 주도했던 강영훈 적십자사 총재가 부대를 찾았다. 이때 군사령부에서는 주요 인사들이 유독 무적태풍부대로 집중해서 방문하는 것이 이상하다며 원인을 조사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전해졌다.
강영훈 적십자사 총재와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의 부대 방문행사 준비를 하면서 신임 작전참모 김형배 중령(육사34기)의 자료 수집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김 참모는 육군대학에 발간되는 ‘군사평론’을 분야별로 분류하여 책자로 만들어 수시로 참조했고, 강 총재에게 보고할 슬라이드를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접 사단 및 군단의 보고내용을 수집하는 등 어떠한 임무를 부여받더라도 총체적인 자료로 참신한 업무보고서를 작성토록 노력했다.
그는 이러한 자료 등을 활용하여 번개불이 튀는 듯한 기발한 착상과 기동력으로 방문객이 가장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용어만 선정하여 심금을 울리게 만들었다.
특히 게재된 사진처럼 김 참모가 직접 제공한 자료로 만든 ‘문덕(文德)을 갖춘 무인(武人)’과 ‘무인기성(武人氣性)을 갖춘 문인(文人)’이라는 강 총재 본인 모습의 슬라이드 보고서를 접한 강영훈 총재는 극찬하며 감동했다.
이때 김 작전참모는 “군문 시절과 당시까지 총재님의 발자취는 우리 군 후배들뿐만 아니라 사회인에게도 많은 귀감이 된다며, 지하철에서 만난 청년과 조크하며 담소한 일화는 생생하게 기억됩니다”라고 보고하자 강 총재는 감사함과 회한에 두눈을 잠시 감았다.
회의실에서 부대현황 보고를 모두 받은 강영훈 총재는 감동에 젖어 극찬하면서 논어에서 자하(子夏)가 말한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사이우즉학, 학이우즉사)” 즉 “벼슬을 하면서도 여유가 있으면 학문을 닦고, 학문을 닦다가도 여유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라며 “일에 나아가기 전에 학문을 닦음은 물론 일에 종사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통해 겪게된 산전수전의 고난의 시간을 학문으로 극복한 그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용장(勇將)이자 덕장(德將)이었다.
그는 부대 격려 위문을 통해 군후배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덕담을 던지며, 벽창호처럼 올곧은 참군인의 길을 걷고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저력을 지닌 적십자사 총재로서 자랑스런 군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다양한 대통령 후보들의 방문을 경험하면서 故 강영훈 장군을 삶의 롤모델로 정하게 돼
강영훈 총재에 앞서 무적태풍부대를 격려 위문했던 김대중, 김종필 대통령 후보들과 이틀 뒤인 30일에 부대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가 떠나자 1992년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중에 강영훈 총재의 방문은 긴 여운을 남겼다. 그가 걸어온 길에서 보인 참군인과 목민관으로 귀감이 된 삶과 부대방문시에 그가 보여준 군을 사랑하는 마음과 본인의 절도와 기개있는 덕담은 다른 방문자들과는 확연하게 비교가 되었다.
한편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국무총리실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공직사회를 비평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총리의 권한과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한 사람’으로 강영훈 전 총리를 꼽으며 최고의 총리로 선정하기도 했다.
정두언의 증언에 의하면, 강 총리는 사표를 책상안에 넣어놓고 일을 했으며 재임 중에 3번이나 사표를 냈었다고 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역시도 여소야대정국에서 정부의 행동반경은 크지 못한 상황에서, 노태우 정부가 강영훈 총리와 같은 신망 높은 인물을 중용해서 북방외교를 트고 변화하는 대외통상환경에 대응해서 경제체질을 강화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대통령선거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대법원장, 적십자사 총재인 강영훈 장군까지 국가의 거물급 인사들의 격려 방문을 통해서 그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고 필자는 앞으로의 삶의 롤모델을 강영훈 장군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故 강영훈 장군의 삶과 방문 당시의 모습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던 기독교 신자들처럼 고대하던 국민들이 드디어 진정한 대통령을 만나는 시간 같았다. 그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고 있지만 국민을 사랑하며 가까이 함께했던 완벽한 대통령감이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