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첩첩산중'...HBM 등 AI반도체 전쟁속에 창사 55년만에 첫 파업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가 1969년 창립한 이후 55년만에 처음으로 노조 파업 사태에 직면했다.
2024년 임금교섭을 놓고 수개월째 사측과 갈등을 빚어온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가 끝내 파업카드를 꺼내 노사갈등이 최악의 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삼노가 당장 파업에 돌입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최근 핵심 사업인 반도체 경쟁력이 주춤해진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노조 파업이 간신히 회복세에 접어든 실적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최근 반도체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할 정도로 내부 위기감이 큰 상태에서 노조 파업마저 겹쳐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삼노는 올해 1월 2024년 임금협상을 위한 교섭에 나섰다.
교섭을 앞두고 노조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이 ‘6∼10%’를 임금인상률 적정선으로 꼽았다. 이를 토대로 노조는 1차 교섭에서 기본인상률(베이스업) 8.1%를 요구했다.
하시만 사측은 기본인상률 2.5%(성과인상률 별도)를 제시해 양측이 시작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노사 양측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사측은 기본인상률을 기존 2.5%에서 3%로 상향 조정하고 △장기근속휴가 확대 △창립기념일 20만 포인트 지원 △난임 휴가 일수 확대 △임신 중 단축근무 기간 확대 등을 새로운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맞서 노조는 기본인상률 요구안을 기존 8.1%에서 6.5%로 낮추고 △성과급 제도 개선 △재충전 휴가 등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양측의 입장차는 뚜렷했다. 양측이 최종 협의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과 2023년에도 임금 협상이 결렬돼 노조가 쟁의 조정을 신청해 쟁의권을 확보한 선례가 있다.
하지만 양측간 갈등이 2022년과 2023년에 실제 파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쟁의권 확보 역시 사측을 압박하는 취지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 전삼노는 이날 파업에 즉각 돌입하지 않고 경기도 화성사업장 부품연구동, 서울 서초동 사옥 등에서 문화행사 형태의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삼노 규모가 급격하게 커져 사측에 강경하게 대응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리고 노사 양측은 지난 28일 올해 임금협상을 위한 8차 본교섭에 들어갔지만 갈등이 폭발했다.
결국 삼성전자 노사는 입장 차이가 여전해 이날 임금협상 안건은 물론이고 향후 교섭 일정도 정하지 못한 채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사측 위원 2명의 교섭 배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결국 파행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전삼노는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파업을 선언했다.
전삼노 관계자는 “사측은 2023년과 2024년 임금 협상 병합 조건으로 직원 휴가제도 개선을 약속했고 노조는 이를 수용해 교섭 타결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했다”며 “하지만 회사는 이를 비웃고 서초에서 반려했다는 말로 교섭을 결렬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세차례 문화행사를 진행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안건도 없이 교섭에 나왔다”며 “책임은 노조를 무시하는 사측에 있다. 전삼노는 이 순간부터 즉각 파업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현재 삼성전자 사측은 어떠한 공식 입장을 아직까지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전삼노 파업은 투트랙 방식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우선 징검다리 휴일인 내달 7일 조합원의 단체연차휴가를 사용하는 방식을 통한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와 함께 24시간 파업 농성도 병행한다.
전삼노는 DS부문(반도체)이 중심인 조직인 만큼 파업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반도체 생산 차질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3월 열릴 주주총회에서 “노동관계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영활동과 반도체 생산 차질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즉 사측도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이와 같은 대비책으로 파업 리스크를 100% 피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난해 14조88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DS사업부는 메모리 업황 개선세에 따라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조9100억원을 내며 간신히 회복궤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사측은 최근 DS부문 임원 연봉을 동결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DS부문장을 전격 교체하는 등 반도체 산업 초격차 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는 AI(인공지능)·디지털 전환을 위한 핵심 산업으로 미국·중국·유럽·일본·대만 등 전 세계 모든 주요 국가들이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도 치열하게 경쟁에 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업계 새로운 캐시카우(Cash cow·주요수익원)로 떠오른 HBM(고(高)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경쟁사를 앞서기 위해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역량을 총집결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원활한 진행 과정에 있는 HBM 엔비디아 테스트를 두고 납품이 불발했다는 구설수에 오를만큼 반도체 저평가로 수세에 몰려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노사 간 갈등이 자칫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진 않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더 많아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 통화에서 “지난해 반도체 사업 손실을 회복하고 미래 경쟁력까지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삼성전자에게 올해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노사 갈등이 장기화 되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경쟁력 강화와 실적 회복을 위해 노사간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파업 실행이 더 구체화되기 전에 조속히 합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