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7.27 05:15 ㅣ 수정 : 2024.07.29 08:25
코로나로 폐허가 된 포레스트 시티, 주거단지 공실율이 90% 육박해 유령만 이주해? 아이들을 삽겹살로 유혹하는데 성공했지만 돌아갈 그랩이 잡히지 않아 통곡의 시간 보내 천신만고 끝에 그랩 호출에 성공,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나와바리 '푸테리 하버'로 진입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누가 알았으랴! 영속적일 것 같던 일상은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닥뜨리며 한방에 무너져 버렸다.
국경이 패쇄되고 무역이 제한되었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은 감염의 공포로 인해 빠르게 제한되었다. 일상의 전복과 뒤이은 물질문명의 몰락은 세계 곳곳에 유령도시를 낳았다.
포레스트 시티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발계획이 지연되고 개발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도시는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의 예정된 수순을 향해갔다.
주거단지는 공실률이 90프로에 가깝다고 들었다. 이 정도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살 수가 없다. 밤이 내린 도시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들짐승이나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이주해온 유령들 외에는 전무할 것이었다.
들어오는 길에 살펴보니 인적이 드물었고 상업경제 인프라가 깡통이었다. 평상시에도 이용객이 없다는 증거였다.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처럼 반려공 ‘윌슨’과 함께 자급자족할 자신이 없다면 일상으로서의 거주는 무리일 터였다. 그나마 골프장과 워터파크 이용객이 들락날락거리며 완전한 폐허로의 진입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점심은 뭘 먹을까, 돌의자를 쳐다보니 돌판구이 삼겹살이 떠올랐다. 오늘 저녁에는 썬웨이에 있는 한식당에 가서 매콤한 김치찌개를 곁들여 삼겹살이나 지글지글 구워야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고기 헌터인 아이들이 즐거워할 생각을 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 뻐근한 고개를 돌리다가 맞은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수영장의 건너편에서 영화배우 ‘진선규’씨와 매우 흡사한 얼굴을 한 쌍둥이 자매가 고요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같은 수영복에 썬햇까지 같은 모양으로 쓴 그들은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었을까. 시선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진귀한 곤충을 관찰하듯 끈기있게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서서 물에 오줌을 싸거나 쓰레기를 저들에게 던진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 것일까? 집요한 시선의 이유를 추측해보다가 결론을 짓지 못한 채 무거운 궁둥이를 일으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이슬람 국가에서 돼지고기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정오가 지나자 이용객들이 좀 더 늘어났고 목소리 큰 사람은 안 봐도 한국 아주머니들, 목소리가 크면서 행동이 조금 더 과격한 이들은 중국 아주머니들, 머리카락과 온몸을 꽁꽁 싸매고도 땀 한방울 흘리는 기색이 없는 이슬람계 여인들과 그 아이들은 차분하게 물놀이 기구를 오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그냥 나가자고 하면 틀림없이 “조금만 더”라고 할 터였다.
수영장 턱에 앉아 기다리다가 ‘이제 가자’, ‘아이 엄마 조금만 더’, 다시 십 분이 흐르고 ‘가자’, ‘아. 조금만 더요. 십분만.’ 잠시 후 ‘그만하고 가자’, ‘아이 아직 못 놀았어’ 등등이 무한루프로 재생된다. 나는 이윽고 이성을 잃은 채 가방을 팽개치며 육두문자를 내뱉을 것이고 아이들은 울면서 물 밖으로 끌려나올 것이었다. 수영장에 갈 때마다 반복되는 의례였다.
“얘들아! 우리 삼겹살 먹으러 가자.”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이들은 독수리처럼 날쌔개 물 밖으로 뛰쳐나오더니 조금도 수영장에 미련을 두지 않은 채 “배고프다. 빨리가자”라고 소리쳤다.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그랩을 호출했다. 그러나 ‘기사님을 찾고 있습니다’와 ‘응답하는 기사님이 없습니다’ 두개의 메시지만 반복되었다.
출발하기 전 ‘자차 이용을 권함, 그랩이 안잡혀요.’ 리뷰에서 봤던 문장이 점점 커지며 내 머릿속을 장악했다. 지난번 초록 홍합 양식장에서 3시간 가까이 그랩을 기다렸던 악몽이 떠올랐다. 아~ 그때의 교훈을 왜 잊었단 말인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그랩이 안 잡힌다는데 그냥 집구석 수영장이나 가지 여기까지 왜 또 기어들어 왔을까! 나는 소리없이 통곡하며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수영장에 한국 사람이 있던데 그랩이 한 시간 이상 안잡히면 가서 픽업을 구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호출을 눌렀다
“엄마, 택시 안잡혀? 배고픈데” 아이들의 인상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우리들은 와이파이 신호가 좀 더 잘 잡히는 곳으로 조금씩 옮겨오다보니 어쩌다 주차장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어둑하고 습하고 무더운 주차장에서 자동차 밀림 방지턱 위에 한 명씩 걸터앉아 그랩을 기다린지 어느덧 한 시간.
픽업 구걸이라도 해야겠다며 몸을 일으키는데, 저 멀리서 번쩍이는 은색의 오픈카가 코너를 휙 돌더니 내 앞에 멈춰섰다. 왁스를 통째로 뒤집어쓴 듯 광택이 철철 넘치는 람보르기니에서 한 남자가 훌쩍 뛰어내렸다. “여기서 뭐해요?”
키 190cm의 장신인 남자는 배우 원빈의 리즈 시절과 흡사한 곱상한 외모에 우락부락 짐승 같은 근육질의 상반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 피해서 도망치더니 고작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요?”
그 남자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상속자이자 ‘얼굴 천재’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한국인 실장이었다. 일어서려 했는데 어디서 다쳤는지 나는 어느새 오른쪽 다리를 살짝 절고 있었고, 그는 나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운전석 옆 자리에 조금은 거칠게 내려놓았다.
“사랑? 이젠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니?” 라며 눈물이 흐를 듯 말듯 맺힌 얼굴로 소리질렀다. 상처입은 야수같은 그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면서, "얼마나...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하며 차갑고 고요하게 뇌까리는데,
"........................." 그가 나를 애타게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뭐라뭐라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데 그 순간, “엄마!!! 엄마!!!!! 안들려? 뭐해?” 아이가 귀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는 급작스럽게 현실로 돌아왔다. 무더위에 오래 그랩을 기다리다 보니 잠시 정신줄을 놓은 듯 싶었다.
실장님은 개뿔! 나는 제자리뛰기를 하며 내 뺨을 두 세대 치고 다시금 진중하게 정신을 모아 그랩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기사님이 배정되었습니다.”
나이스! 신은 이번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몸은 열기와 습도로 인해 축축히 젖어 있었다.
그랩은 오 분 만에 도착했다. 나는 주차장에서 뛰쳐나가 유관순 열사가 광복이라도 맞이한 듯한 표정으로 그랩을 반겼다. 안경을 쓴 중국계 기사님은 나의 과도한 환영에 움찔 놀라시더니 아이들과 내가 차례로 차에 오르자 센스있게도 에어컨 바람을 강속으로 높여주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뒷좌석에서 슬라임처럼 퍼져버렸다.
“엄마, 에어컨 만든 사람 노벨상 백 개 줘야 해”
“그래. 맞아. 이제 다른데 가지 말고 동네에서만 놀자.”
“응, 알겠어. 삼겹살 먹으러는 갈거지?”
“당근이지.”
차는 신속하고 편안하게 달려 우리의 나와바리 ‘푸테리 하버’로 진입했다. <27화에 계속>
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