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20)] 정글에서 고립되다② BTS를 좋아하는 이십대 초반의 천사, 빨간 경차를 몰고 구출하러 와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6.02 09:37 ㅣ 수정 : 2024.06.03 09:42

그랩을 켜서 아무리 호출해도 응답 없어, 다른 호출택시 앱인 TADA를 켜도 마찬가지
정글투어 리뷰에서 읽었던 ‘자차 이용을 권함’이라는 글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돼
투어 사무실 아주머니에게 차를 불러달라고 부탁, 동분서주하던 그녀가 '희소식' 전해
호텔에 도착한 뒤 정리한 오늘의 교훈=그랩이 잡히지 않는 시외는 절대 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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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식당 식탁 위의 고양이들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집에 가서 시원한 것을 먹으며 좀 쉬다가 저녁에는 외출해서 맛있는 것을 사먹을 예정이었다. 정글투어를 해냈다는 뿌듯한 기분으로 그랩을 호출했는데,

 

호출에 응답하는 기사가 없다는 알림이 되돌아왔다. 이후로도 여러번 시도했지만 이 지역으로는 그랩이 배정 되지 않았다. 또 다른 호출택시 앱인 TADA를 켜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정글투어 리뷰에서 읽었던 ‘자차 이용을 권함’이라는 글이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자차 이용 권함’ 그 문장은 점점 더 또렷하게 커지며 머릿속을 장악했다.

 

당황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큰 애가 “엄마, 왜 그래? 택시가 안 와?” 라고 물었고 나는 황급히 포커 페이스를 가장하며 “우리 여기서 뭐 좀 먹고 갈까? 여기 초록 홍합 요리가 꽤 유명하데. 하하하” 하며 아이들을 식당 쪽으로 이끌었다.

 

식당은 바다쪽으로 난 길 위에 천막을 치고 식탁과 의자를 가져다 놓은 노천 식당이었다. 멀지 않은 건너편 주택에서 요리를 하는지 그쪽에서 연기와 함께 양념냄새가 피어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뭐라도 먹으면서 천천히 그랩을 기다리자’

 

초록 홍합을 메인으로 내세운 식당은 지역에서 꽤 유명한지 방문객들로 분주했다. 원탁 위를 요리로 가득 채운 채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두 명의 종업원들은 일손이 부족한지 식사가 끝난 자리를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꾀죄죄한 몰골의 고양이들이 식탁 위에 올라가 손님이 남긴 음식들을 먹었다. 손님 및 종업원들 아무도 고양이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우리는 말 없이 한쪽 귀퉁이에 앉아 식사에 열중한 사람들과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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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죄죄한 몰골의 고양이들이 식탁 위에 올라가 손님이 남긴 음식들을 먹고있다. / 사진=윤혜영

 

축구 유니폼을 입은 갈색의 사내가 메뉴판을 던져주고 갔다. 모든 식탁 위에는 ‘오탁오탁(Otak-otak)’이 놓여져 있었는데 손님들은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로 그것을 가져다가 까서 먹고 꼬챙이는 허공으로 던졌다.

 

오탁오탁은 생선살을 양념해 얇게 편 다음 바나나잎에 싸서 숯불에 구운 요리로 입맛을 돋우는 에티타이저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즉석에서 구워주는 오탁오탁을 살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자주 사먹는 군것질 거리이다.

 

오탁오탁 위에는 파리들이 수북히 앉아 있었다. 손으로 쫓으면 날아올랐다가 다시 붙었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사내들이 다 먹은 식탁을 정리하는데, 세상에! 행주의 색깔이 시커맿다. 창업 이래 한번도 바꾸지 않은 것이 틀림 없었다. 행주가 훔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마도 쉰내가 진동할 터였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뭔가를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며 입맛이 뚝 떨어졌다. 다시 그랩을 호출했다. 그랩은 ‘기사 찾기’만 무한 반복했다. 그렇게 응답하지 않는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얼음처럼 냉랭하게 굳어갔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랩 호출을 계속 눌렀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안되겠다 싶어 투어 사무실로 달려갔다. 아주머니에게 그랩이 잡히지 않는다고 차를 좀 불러주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바깥으로 나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젓더니 지나가는 아저씨를 불러 우리를 가르키며 뭐라뭐라 말했다.

 

남자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가던 길을 다시 가버렸다.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사무실로 들어갔고, 그렇게 또 한시간이 흘렀다. 이젠 망둥어도 원숭이도 다 싫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이들은 기다림에 지쳤는지 의자에 늘어져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고, 나는 마지막 보루인 아주머니를 기다리며 그랩도 쉬지않고 호출해가며 초조하게 앉아 다리를 떨었다.

 

건너편의 식탁에서는 홍합껍데기가 수북히 쌓인 그릇을 앞에 둔 사내가 만족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인후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이더니 고양이의 얼굴에 후-하고 길게 뿜어냈다. 고양이는 연기에 눈을 가늘게 찌푸렸으나 아랑곳않고 계속 그릇을 핥았다. 남자는 다시 연기를 흡입하더니 고양이에게 뿜었고 그와 일행들은 깔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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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그냥 레고랜드만 다니며 얌전히 있을 것을, 무슨 정글 투어랍시고 차도 없이 여기를 왜 기어들어왔을까. 나는 자학을 하며 한 없이 쪼그라들었다.

 

얼마 후 담배 피던 남자가 떠나고, 다른 손님들도 떠나고 식당에는 우리만 남게 되었다. 커피와 마일로를 시켰더니 뜨거운 물에 타서 가져다주었다. 이 더위에 뜨거운 음료라니. 센스 따위는 개에게 줘버렸을까.

 

나는 이 지독한 현실을 잊으려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았다. 2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지났을 무렵, 투어 사무실의 아줌마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그랩이 ‘드디어’ 잡혔다고 5분 후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바닥에 이마를 붙이고 무한정 절을 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이토록 고마울수가. 드디어 탈출이구나. 나는 최대한 경쾌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 집에 가자”

 

우리를 구출하러 온 그랩은 빨간색 경차였고 조호바루의 지저분한 택시와는 확연히 대비되게 깔끔한 내부로 나를 놀라게 했다. 히잡을 쓴 이십대 초반의 천사가 헬로우하며 인사를 건넸다. 목적지를 간신히 말하고 나는 슬라임처럼 퍼져 버렸다.

 

차 안에는 한국 노래가 울려 퍼졌는데 우리의 천사가 내게 한국인이냐며 묻더니 BTS를 아느냐며 질문을 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대장금이나 주몽 같은 드라마를 이야기 했었는데 지금은 K-POP이 대세이다. 블랙핑크, 런닝맨, 등을 이야기 하고 무엇보다 젊은 여성들은 BTS를 빼놓지 않는다.

 

그랩 천사도 자신이 BTS를 너무 좋아한다며 한국의 ‘명동’에 놀러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가 열광하는 BTS. 정작 누군지 나는 잘 모른다. 숙소에 돌아가면 머나먼 조호바루 사람들까지 녹여 한국을 알린 BTS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천천히 피로에 몸을 맡겼다.

 

BTS의 목청이 기세좋게 팜 트리 정글에 울려퍼졌다. 차는 신속히 달려 무사히 호텔 앞에 내려 주었다. 오늘의 교훈, 그랩이 잡히지 않는 시외는 절대로 가지 말 것. <2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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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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