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17)] 위험한 공놀이하는 한국 어린이들과 당황한 호텔 직원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5.04 05:15 ㅣ 수정 : 2024.05.04 05:15

아이들이 호텔에서 괴성을 지르고 뛰어다녀도 제지하지 않는 한국 엄마들을 만나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들의 발생에 지극히 공감하며 스스로 '맘충'을 경계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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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바루 Puteri Horbour의 일출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이곳에서는 매일 일출과 일몰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다니며 권적운을 만들어 놓으면 저 멀리 잿빛 산 아래에서 레몬빛이 산의 테두리를 타고 번지며 해가 천천히 올라온다.  고요하게 정중동 하는 태양은 어느덧 하늘의 중앙에 올라 맹렬한 황금빛의 광채를 호수 위에 순식간에 흩뿌리며 물색은 금빛과 은빛으로 햇살을 되쏜다. 

 

튕겨내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기지개를 켜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는다. 반신욕을 하며 뻐근한 몸을 풀고 조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 어느덧 아침의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해가 일찍 뜨니 아이들도 자동적으로 기상시간이 빨라졌다.  아침 메뉴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골라온다.

 

아이들은 갓 구운 크루아상과 스크램블 에그와 우유, 파인애플을 담아 오고, 나는 현지식으로 나시르막과 뀌(Kueh) 한조각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인다. 

 

나시르막은 코코넛 밀크와 판단잎을 넣고 지은 쌀밥이다. 여기에 대여섯 가지의 반찬을 곁들이는데 보통 삶은 달걀이나 오이, 땅콩과 채소조림, 잔멸치 등등이 필수로 있고 여기에 삼발 소스는 옵션이다. 

 

커리나 생선, 고기볶음을 곁들이기도 한다. 나는 밥에 오이와 땅콩, 바싹 튀긴 멸치와 삶은 계란을 넣고 비벼 먹는 걸 즐긴다. 가끔 매콤한 한국음식이 생각날때는 삼발을 한수저 떠넣고 비빔밥처럼 퍼먹는다. 

 

나시 르막은 쌀밥을 메인으로 반찬구성을 빼고 곁들이며 먹을 수 있는가정식 백반과 같은 개념인데 인도네시아에서 즐겨먹는 '나시 짬뿌르(Nasi campur)와 구성이나 먹는 방식이 거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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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 르막(Nasi lemak) / 사진=윤혜영

 

오늘은 레고랜드에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셔틀버스로 10분 거리인 레고랜드에 매일 놀러가는 것이 우리의 조호바루 생활의 최대목표였기에 연간회원권을 만들어왔고 오늘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로비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직선거리의 반대편에서 주방장 모자를 쓴 덩치 큰 말레이시안 남자가 나를 향해 직진해 오고 있었다. 황급한 발걸음에 눈동자가 확대되어 있었다. 

 

"너 한국 사람이니?"

 

"응. 무슨일이야?"

 

"주차장에서 한국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어. 부모들은 없고 말려도 말을 듣지 않아. 위험해.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야. 아이들을 좀 말려줘."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보니 초등 저학년 정도의 사내아이들 세 명이 로비 앞 차량 통행로에서 신나게 공을 튀기며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얘들아! 부모님 어디계셔?"

 

"모르는데요."

 

"여기서 공놀이하면 위험해.  얼른 들어가"

 

애들은 실실 웃으며 공을 몇 번 튕기더니 야, 들어가자 하고는 마지못한듯 움직였다. 그리고는 로비 출입문 앞에서 다시 공놀이를 시작했다. 투숙객들은 그 아이들을 피해서 눈살을 찌푸리며 드나들었다.

 

보통 이런류의 아이들은 피하는게 상책이다. 위험한 상황에 대한 제지를 하거나 훈계를 하려들면 그 아이들의 부모가 나타나 '당신이 뭔데 우리애한테 그러냐고' 항의를 하며 인상을 쓰기 때문이다.

 

일단 차가 다니는 곳은 피했으니 나머지는 내 알바 아니다 싶어 소파에 다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공놀이 하는 아이들의 부모로 추정되는 한무리의 엄마들이 수다를 떨며 나타나 소파에 앉아 계속 수다를 이어갔다. 그 중 어느 누구도 아이들에게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스쿨버스가 올때까지 행위를 계속했다. 엄마들은 수다 떨고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나는 이 같은 광경을 목격할때마다 초사이어인처럼 시퍼런 분노의 불꽃에 휩싸이는 기분이다. 아이들보다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는 엄마들이 더 싫다.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들이 생겨나는 것에 지극히 공감을 하며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맘충이 되지 않을까 경계를 하는 마음이 든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공중도덕과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장황히 설파하며 애먼 우리애들을 훈계했다. <1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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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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