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30)] 한달살기 소고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10.11 05:15 ㅣ 수정 : 2024.10.11 05:15

현지 블랙핑크 인기는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즈 이겨먹는 역대급 돌풍인 듯
커피숍과 음식점, 펍들이 늘어선 둑길 맞은 편...구십프로 이상이 한국인 손님
골프와 국제학교가 좋다고 들었지만, 맛사지나 영어학습등은 만족할 수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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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입구에는 물이 흐르는 좁고 긴 수로에 작은 물고기와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동물원에서 식당까지는 그랩으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구도심에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많은 로컬 식당들과 상점들, 왕궁, 쇼핑몰 등등이 몰려 있어 고요한 신도시 대비 사람 사는 활기가 돌았다.

 

세답 코너는 단층의 커다란 건물로 넓은 대지에 외따로 자리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기와를 얻은 지붕과 콘트리트와 유리, 나무를 적절히 배치한 디자인이 유니크했다. 특색 없는 콘트리트 빌딩들만 몰려있는 조호바루에서는 드물게 멋진 디자인이었다.

 

식당 입구에는 물이 흐르는 좁고 긴 수로에 작은 물고기와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과하지 않으면서 세련된 건축물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칭찬하자면 이타미 준이 떠올랐다고 할까.

 

오후 5시의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손님은 얼마 없었고 직원들은 카운터 남자와 서빙맨 한 명만 보였다. 메뉴판에는 락사와 뀌, 아이스 카창, 비프 렌당 등등이 있었고 우리는 식사가 될만한 요리 두어개와 뀌를 세 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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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카운터 옆에는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여러 종류의 뀌를 전시해 놓았다.

 

요리는 기억에 남을만큼 충격적이진 않았고 가격도 한국 물가에 비교하면 저렴한 수준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뀌를 테이크 아웃했다. 판단으로 반죽해 코코넛 가루를 묻힌 온데온데를 구입해서 숙소로 가는 그랩을 호출했다.

 

오후에는 숙소에서 망고샐러드와 토스트를 해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는 배도 꺼뜨릴 겸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

 

내가 묵고 있는 프레이저 플레이스는 파인트리라는 호텔형 레지던스와 나란히 붙어있는데 통로가 이어져 있어 수영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파인트리의 수영장은 볕이 잘 들어와서 저녁에 물이 미지근했고 프레이저 플레이스의 수영장은 그늘이 져서 낮에는 수영하기 좋으나 밤에는 물이 매우 차가웠다. 그래서 우리는 낮과 밤의 기온에 따라 수영장을 바꿔가며 이용했다.

 

파인트리 1층에는 Pasar라는 제법 큰 규모의 마트가 있어 가끔 가는데 생수나 과자가 떨어지면 간혹 들렀다. 사실 그랩의 배달비가 매우 저렴해서 생수 같은 무거운 상품은 주문하는게 훨씬 편하지만 외국가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가 현지 마트 구경이다.

 

한달살기를 하다 보니 마트를 거의 매일 들러기에 어느 마트에 뭐가 주력 상품이고, 과일은 내일 아침에 먹을 망고가 떨어져서 Pasar에서 구입을 했는데 내가 늘 망고를 사러가는 곳은 NSK마트이다. 크기도 크고 가격도 저렴하다.

 

큰 아이는 한류 아이돌 블랙핑크 사진이 인쇄된 오레오 쿠키를 샀다. 한국에서도 조호바루에서도 한국 아이돌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그 옛날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다 이겨먹는 역대급 돌풍인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연예인 사랑이 지극하고 부모들은 못마땅하다. 블랙핑크 멤버의 얼굴이 박힌 오레오 봉지를 보고 감격하는 딸아이를 보고는 못마땅한 마음이 들어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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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아이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 1층의 산책로로 내려갔다. 검은 강물이 출렁거리고 인간이 만든 둑을 따라 야자수가 늘어섰다. 야자수에 휘감긴 반짝반짝 알전구들. 레몬그라스와 땀냄새, 흙냄새가 섞인 미지근한 바람이 스쳐 지났다.

 

둑길 맞은편에는 커피숍과 음식점, 펍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가게마다 손님들이 듬성듬성 들어차 있었다. 하드락 까페, O’Coffee, KYOO테판야끼, 헤리티지 위스키 등등이 있고 구십프로 이상이 한국인 손님이다. 그러다보니 가격 또한 한국과 비슷해서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철판구이 가게의 고기 굽는 냄새가 자욱히 퍼졌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어른들은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술집 앞에서 2인조가 대중적인 팝송으로 라이브를 하였고 이 모두가 뒤섞이며 조호바루인 듯 한국의 어느 거리인듯 애매모호한 분위기 속에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거리를 바라보며 애매하게 서 있었다. 한달 살기를 하러 오면서 외국의 휴양 분위기도 즐기고 아이의 영어성적 향상도 어느 정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은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법한 개성 없는 빌딩들 속에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단기간의 비싼 영어학원 프로그램으로 가성비의 이국적인 스테이와는 매우 거리가 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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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골프와 국제학교가 좋다고 들었지만 그것과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는 맛사지도, 영어학습도, 맛집도 관광도 모두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현지인들만 이용하는 식당에 다니거나 알음알음 발품을 팔아 현지인 튜터를 섭외하거나 차를 렌트해서 쿠알라룸푸르나 말라카 등지를 주말마다 다녀올 수도 있다.

 

싱가폴이 가까운 것도 이점이다. 그러나 이곳의 영토는 매우 광대하고 짧은 한달 살기를 하면서 작지만 알차게 누리려면 이곳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감이다. <3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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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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