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 뷰] 최태원 회장 '야성적 충동'이 SK하이닉스 역대 최대 실적 '밑거름'

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1.25 07:00 ㅣ 수정 : 2025.01.26 07:10

최태원 회장, 2012년 하이닉스 인수...'우아한 백조'로 급성장
SK하이닉스, 작년 매출액 66조· 영업이익 23.4조 '사상 최대'
HBM으로 반도체 새 신화 이뤄내…데이터센터용 AI 수요 급증
메모리 업황 주춤한 가운데 HBM 반도체 부문 '효자'로 우뚝
HBM 제품 경쟁력·시장점유율로 내년까지 1위 이어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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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정(왼쪽)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 SK하이닉스/뉴스투데이 편집]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설파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되살아났다.

 

야성적 충동은 동물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듯 기업인도 사업 경험과 직관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기업을 경영할 때 이성(理性)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본능에 따라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가정신을 뜻한다.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인 예다. SK하이닉스는 1983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전자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해 반도체 제조·판매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현대전자산업은 글로벌 D램 수요부진으로 경영위기에 빠졌으며 회사 이름을 2001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꾸는 등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2002년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가는 처지가 됐다. 

 

현대전자산업은 자칫 흑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2012년 SK 품에 안겨 'SK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SK그룹과 반도체 업계에 한 획을 긋고 있다. 시작은 그룹의 ‘미운 오리 새끼’였지만 이제는 '우아한 백조'로 거듭날 만큼 급성장을 일궈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2년 2월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는 야성적 충동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최태원 회장은 인공지능(AI) 흐름을 눈여겨보고 SK하이닉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과감한 경영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최 회장은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HBM(고(高)대역폭메모리)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HBM 흥행이 이어져 SK하이닉스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섰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남다른 혜안이 한 때 적자로 흔들렸던 기업을 1등 기업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지난해 HBM 판매 호조로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는 등 유종의 미를 거뒀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매출액이 그동안 역대 최대치로 기록된 2022년을, 영업이익은 메모리 초호황기라고 불리는 2018년 성과를 뛰어넘었다. 

 

SK하이닉스의 2024년 연간 실적은 매출액 66조1930억원과 영업이익 23조4673억원이다. 이는 매출액 32조7657억원과 영업손실 7조7303억원을 낸 2023년과 비교해 매출은 10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또한 그동안 역대 최고 매출은 44조6216억원을 낸 2022년이었는데 지난해는 이보다 21조원 가량 늘어낫다. 영업이익도 반도체 초호황기로 불리는 2018년 20조8438억원보다 2조원 넘게 앞섰다.

 

특히 4분기만 놓고 보면 매출액은 19조7670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12% 증가했다. 영업이익 또한 15% 오른 8조828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SK하이닉스는 연간 실적이 삼성전자를 추월해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분야 ‘만년 2등’으로 불리던 꼬리표를 떼고 비로소 ‘HBM 1인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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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2018년, 2024년 실적 발표 자료 발췌 [그래프 = 뉴스투데이]

 

앞서 지난해 3개 분기와 마찬가지로 4분기, 그리고 연간 실적 모두 AI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강세에 따른 HBM 호조가 이끌었다. 업계 선두에 선 HBM 기술력과 수익성 중심 경영이 빛을 발했다는 게 SK하이닉스측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컨퍼런스콜을 통해 “지난해 4분기는 PC와 스마트폰 등 컨슈머 제품 수요 회복이 지연됐지만 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데이터센터용 AI 메모리 제품이 전체 수요를 견인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4분기 기준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3E와 서버용 DDR5 제품 판매 확대로 출하량이 3분기 대비 한 자릿수 중반으로 성장했다. 

 

특히 HBM3E 12단 제품 출하가 시작되면서 HBM은 전체 D램 내 매출 비중이 3분기 30%에서 4분기 40%로 늘어났다.  D램이 4분기 총 매출의 75%를 차지한 점을 고려해 추정한 HBM 매출은 5조9301억원이다. 이는 전체 D램 매출에서 16%를 차지했던 지난해 동기 HBM 매출(1조1758억원)보다 4조8000억원 가량 증가한 것이다.

 

연간 기준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3월 업계 최초로 HBM3E 8단을 공급한 데 이어 지난해 4분기에 12단 제품을 업계 최초로 공급해 HBM 1위 사업자 지위를 굳건히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HBM 매출은 2023년 대비 4.5배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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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CES 2025 전시관에 전시된 SK하이닉스의 HBM3E 16단 [사진 = SK하이닉스]

 

올해 SK하이닉스 전망은 밝다. 반도체 업계의 전통적 계절 비수기인 1분기는 수요 부진으로 전체 실적이 둔화할 수 있지만 AI 시장이 꾸준하게 성장해 HBM 시장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AI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정상화되고 있고 AI 추론형도 HBM 수요가 예상보다 크다”며 “서버 투자와 HBM 성장 속도를 반영하면 올해 실적 개선에 대한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메모리 업체 실적이 크게 개선되기 어렵지만 HBM 시장은 2024년 약 4배 성장한 데 이어 2025년에도 2배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며 “메모리 업체간 HBM 성과에 따른 실적 차별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SK하이닉스의 HBM 공급 물량은 대부분 계약이 끝난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컨퍼런스콜에서 2026년 HBM 물량 계약이 상반기에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설명했다.

 

김영건 연구원은 또 “D램 매출액의 40%에 이르는 HBM 사업이 올해 100% 이상 성장할 예정"이라며 "특히 내년 HBM 물량도 거의 확정될 것이라는 점은 회사 생산설비 운영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시킬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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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HBM 개발 연혁 [사진 = SK하이닉스]

 

현재로서는 SK하이닉스를 위협적으로 견제할 만한 경쟁업체가 사실상 없다는 점도 올해 실적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점이다.

 

현재 글로벌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 3파전 양상이다. 그러나 이들 3사의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로 SK하이닉스가 압도적이다.

 

HBM 시장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때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박빙'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HBM 수요가 가장 큰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엔비디아의 최신 HBM 공급선을 SK하이닉스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점도 SK하이닉스가 '부동의 1위'가 될 수 있는 강점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엔비디아에 4세대 제품 ‘HBM3E’을 공급할 수 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미디어 간담회에서 삼성전자 품질 테스트가 현재 진행 중이라며 "HBM 재설계(new design)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납품이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부터 5세대 ‘HBM4’이 엔비디아 AI 가속기 '루빈‘에 탑재되며 본격적인 주력 제품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재설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HBM3E로 판도를 뒤집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오히려 승부처를 HBM4로 옮겨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마이크론은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아직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이크론이 올해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을 20% 이상으로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생산기지를 확충하며 인력 보강에 나서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를 가볍게 보면 안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올해 HBM 물량은 이미 지난해 완판된 상태"라며 "추가 물량이 공급될 가능성도 있지만 캐파(생산능력)를 고려하면 회사 간 점유율을 뒤집을만한 수준이 안돼 올해도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이 독보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SK하이닉스는 이미 2026년 공급 물량 논의를 시작해 2분기 내 물량 대부분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되는 HBM4 12단 양산이 계획대로 진행돼 내년 적기에 공급이 이뤄지면 2026년에도 SK하이닉스가 1위를 계속 거머쥐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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