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갇혀 버린 북한 화학공업
북한은 이해하기 힘들다.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허덕이는데, 연일 비싼 미사일을 공해상에 쏘아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이상 국경을 닫아걸었고 내부 소식은 알 길이 없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북한과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경제안보적 관점에서 북한 내부, 남북관계, 국제상황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동용승 (사)굿파머스 사무총장] 북한은 경제의 중요 부분을 외부세계에 의존하면 이에 종속되기 때문에 경제의 ‘자력갱생’을 고집해 오고 있다.
자력갱생으로 인해 북한 대부분의 산업 분야가 낙후되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뒤떨어진 공업 분야 중 하나는 ‘화학공업’이다.
무연탄과 석회석이 풍부해 이들 지하자원을 이용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19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석탄을 이용한 화학공업이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 문제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세계는 석유화학공업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북한은 방향을 틀지 못했고 지금도 자력갱생을 외치며 여전히 석탄 중심의 화학공업을 고집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의 화학공업은 1960년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1960년대에 갇힌 北 화학공업, 아직도 카바이드
‘카바이드(carbide)’ 하면 밤낚시를 즐길 때 휴대용 전등 대신 사용하던 카바이드 조명,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를 남긴 카바이드 막걸리 같은 게 생각난다. 그야말로 옛 추억거리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카바이드가 여전히 아주 중요한 용도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카바이드는 19세기 말 알루미늄 제련법을 개발하다 우연히 발견된 물질인데, 1차 세계대전까지 카바이드에서 나오는 아세틸렌으로부터 많은 유기공업 약품을 제조할 수 있어 활발히 사용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화학공업이 석탄 중심에서 석유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카바이드 활용도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로 1960년대부터 카바이드 공장을 전국적으로 건설했다. 그리고는 카바이드를 이용해 합성섬유와 합성수지 등 유기화학공업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석회질소비료, 염화비닐, 비날론(Vinalon), 유기합성제품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게 됐는데, 북한은 이를 아직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들의 기술력을 선전하고 있다.
카바이드는 북한의 화학섬유공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원료다. 카바이드를 이용해 북한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화학섬유 ‘비날론’을 만들기 때문이다.
비날론은 카바이드에서 나온 아세틸렌을 사용해서 만드는데, 면과 비슷하지만 면보다 더 질긴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북한에서는 ‘주체섬유’로 불리며 오랫동안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함흥에는 카바이드 생산에서 아세틸렌 생성과 비날론을 이용한 방사까지 일련의 공정을 갖춘 2.8비날론 연합기업소가 위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날론은 나일론에 밀려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북한에선 여전히 중요한 섬유 원료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 질 좋은 다양한 천을 접하면서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 지금은 시장에서 비날론 원단으로 만든 제품은 입지도 않는다고 한다.
• 비닐 구하기 전쟁
북한은 항상 식량부족에 시달린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과다한 화학비료 사용에 따른 토지의 산성화로 인해 농업생산성이 낮은데 기인한다.
북한이 자랑하는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공업에서 질소비료를 생산한다고 하지만 생산량은 미미하다. 생산된 암모니아는 주로 폭발물, 합성섬유 공업원료로 우선 사용되고 있다.
카바이드를 이용한 인회석 인비료가 북한 화학비료의 대중을 이루는데 현재는 이마저도 생산이 미미하여 시비 시절이 되면 인분 모으기에 여념에 없을 정도이니, 농업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는 환경 문제 때문에 합성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에 애를 쓰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이 없어서 못 쓰는 귀한 물건이다.
북한은 합성수지도 카바이드를 통해 주로 생산하는데, 합성수지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해마다 파종기가 되면 북한의 기관들은 비닐 박막 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합성수지 원료를 들여다 일부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하는 공장들도 생겼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이렇듯 북한의 화학공업은 마치 갈라파고스처럼 1960년대 초반에 멈춰 있다. 그로 인해 비료, 일용품, 의류, 제약 등에 이르기까지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산업들도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 경제교류가 의류 임가공 사업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런 북한 산업의 낙후성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장마당을 통해 질 좋은 외국 상품들을 접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여전히 카바이드를 중심으로 한 화학공업에 매달리고 있으니 북한산 화학제품들이 내부에서도 외면 받고 있는 것이 북한 화학공업의 현주소다.
북한의 화학공업은 완전히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실정이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 동용승(Dong, Yongsueng) ▶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수료 / (사)굿파머스 사무총장 /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통일북한학과 겸임교수 / (전)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경제안보팀장) / (전)대통령 통일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