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은 중국과 경제협력보다 미국의 안보지원과 민주주의 택했다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지난 1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대만의 정체성을 앞세운 집권 여당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약 40%인 558만 표를 획득해 당선됐다. 대만 국민은 중국의 대만통일 공세에 거부감을 보였으며 중국의 거듭된 군사위협에도 불구하고 현재 집권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와 미국과의 협력을 택했다. 향후 4년간 대만은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현재의 친미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선거 과정에서 집권 여당 후보인 라이칭더는 모든 여론 조사에서 1위를 나타냈다. 선거 막판에 국민당 허요우이 후보에게 오차 범위 내 추격을 허용했지만 역전되지는 않았다. 라이칭더 후보자는 평소 대만의 독립을 주장했으나 선거 과정에서는 다소 자제하면서 대만의 정체성과 민주주의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 중국의 선거 관여에도 불구, 제2의 홍콩 될 수 있다고 우려해 라이칭더 선택
그는 주미 대만대표처(주미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 샤오메이친(萧美琴)을 러닝메이트로 하여 미국과 협력 증진 의사를 밝혔다. 대만 국민은 아직도 홍콩이 중국에 의해 활력과 번영을 잃고 중국화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며 대만이 제2의 홍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표심이 현 정부의 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라이칭더를 선택하게 했다.
야당인 국민당 후보 허요우이는 중국과 관계개선을 주장했다. 대만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과 경제협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중국의 군사위협도 줄여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호소는 설득력이 있어 허요우이는 약 33%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젊은 층은 국민당이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부각했지만 제3당인 민중당을 지지했다. 그들은 국민당을 자신들과 소통되지 않는 고압적인 노쇠한 정치집단으로 여겼다.
제3당인 민중당 커원저(柯文哲)는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았으나 미국과 협력하는 동시에 중국과 관계개선을 주장하며 민생에 중점을 두겠다는 외침이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아 약 27%를 득표했다. 동시에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기존 2석에서 8석(총 113석 중 민진당 51석, 국민당 52석, 무소속 2석)으로 늘었다. 대만 정치에서 향후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번 대만 선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친중성향의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면서 선거개입으로 비난을 받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SNS를 통한 흑색선전과 가짜뉴스 유포 등을 포함해 경제적으로는 지난해 12월 대만산 화학제품 12개 품목에 대해 관세 감면을 중단하고 선거 3일 전인 10일에는 대만 농산물과 섬유, 기계류 등도 관세 감면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무역을 하는 기업인을 겨냥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정찰용으로 의심되는 풍선 8개를 대만으로 날려 보냈고, 중국 군용기들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었으며 군함도 대만 일대를 항해해 긴장을 조성했다. 또한,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 기업인들에게 항공료 90%를 할인해 대만으로 가서 투표하라고 독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조치도 대만 국민의 표심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군사위협과 경제제재는 대만 국민에게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수시로 겪고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 중국, 대만독립 반대하는 60%의 민심이 선거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불만 토로
국민당 허요우이 후보는 선거결과 발표 후 즉시 승복한다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민진당 정부가 미국-중국-대만 관계를 잘 맺어 대만 국민 생활이 안정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여론 조사에서 오차 범위 내 박빙이었고 33%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27%의 지지를 받은 민중당은 새로운 가능성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중국은 대만독립에 반대하는 국민이 60%인데, 이 민심이 선거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선거결과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만 신정부가 대만독립 추구라는 금지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중국에도 대만독립을 사주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국은 대만 신정부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고, 나아가 미·중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을 사전 예방한 것이다.
대만에는 사전 투표나 부재자 투표가 없어 선거결과에 대한 조작 의혹 등이 제기되지 않는다. 대만은 투표한 기표소에서 바로 개표가 진행되는데, 한 장씩 이상 유무를 확인하며 손으로 개표한다. 따라서 대만 국민 누구도 개표과정에서 부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 제도에서 패배자는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고 승리자는 패배자를 포용하면서 부담 없이 국민통합을 이루어 갈 수 있다.
우리는 4년 전 총선 결과를 두고 아직도 부정선거, 전산 조작 등의 의혹이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 가지 구설에 시달린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별한 조치가 없다면 올해 4월 총선을 포함해 모든 선거에서 유사한 문제 제기가 예상되는데 정부는 대만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 신정부, 대만독립 추구 자제하며 현재의 대만해협 균형과 평화 유지할 듯
이번 대만 총통선거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선거결과가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 여부에 영향을 주어 미·중 패권경쟁과 동북아 정세에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 신정부는 장기적으로 대만독립을 추구하겠지만 당장은 전쟁을 피하고 평화가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에 현재의 대만해협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과격한 독립 추구 행보는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또한 대만통일을 추구하지만, 평화통일이 우선이고 무력통일은 최후의 선택이다. 중국은 대만을 무력침공할 상황으로 첫째, 대만이 독립을 선포했을 때, 둘째, 대만에서 핵개발을 하거나 핵을 보유했을 때, 셋째, 대만에 외국군이 주둔할 때라고 공표했다. 대만도 중국의 침공을 초래할 상황을 피하고, 중국도 이 3가지 상황이 아니면 미국과 충돌하는 대만 침공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 대만과 중국의 균형은 대만에서 누가 집권하든 깨지지 않을 것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 패권경쟁의 결전장이다. 대만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안보지원 공약의 신뢰를 잃어 글로벌 리더십에 타격을 받고 패권국의 지위도 유지하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군사 개입을 3차례 언급했다. 반면 중국은 대만통일을 이루어야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명분이 생긴다.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동급의 지위를 얻기 위해 대만통일이라는 성과가 필요하다.
이같이 대만을 두고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현상유지라는 현재의 균형상태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중국은 다음 총통선거가 벌어질 4년 후를 기약할 것이다. 대만 정권의 친중화가 이뤄지는 것이 평화통일의 가장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