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14)] 조호바루의 우리집 '프레이저 플레이스'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4.06 05:15 ㅣ 수정 : 2024.04.12 10:59

조호바루에서 한 달 머물 숙소로 신도시에 있는 레지던스형 호텔 프레이저 플레이스로 계약
나무 데크가 깔린 작은 베란다로 나가니 풀냄새가 섞인 바람 너머로 시퍼런 리버뷰 펼쳐져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image
Puteri Harbour 요트 정박장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조호바루에서의 3일차. 익숙한 아잔의 알람소리에 반응하며 자동으로 눈이 뜨인다. 창 밖은 연한 회색 빛으로 동 트기 전.

 

계란 반숙의 노른자 같은 햇살이 구름 아래에서 천천히 떠오른다. 희고 노란 빛은 잿빛의 대기 속으로 서서히 번져나가며 주변을 점점 더 환하게 레몬색으로 범위를 확장해 나가며 물들였다.

 

경건한 듯 처연한 아잔의 울림은 기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아잔 소리에 맞춰 양치질 속도도 서예의 한 획을 내려긋듯 신중해진다. 세수도 푸푸푸 거칠게 하지 않고 물을 부드럽게 끌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거울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생겨나 없어지지 않는 내 오른쪽 눈밑의 주름이 거슬린다. 나이가 드는 증거인가. 원하지 않지만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슬프다. 손바닥으로 주름 부분을 꾹꾹 눌러주고 세수를 마쳤다.

 

밤에는 달리 할 일이 없기에 9시면 칼잠을 자는 우리들.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다보니 아침잠이 옅다. 밥 먹으러 가자고 소리지르지 않아도 알아서 깨어나 조식당으로 향하는 아이들.

 

한국이었다면 이불을 휘감고 잠에 취해 굴러다니는 아이들을 깨우려 부엌과 침실을 여러번 오가며 아침부터 새 된 소리를 질러대고 뒤집개로 계란을 부치면서 또다시 잠에 빠진 아이들의 이름을 목청 높여 부르는 장면들이 아침의 일상이었던 터.

 

습관이 바뀌니 이렇게도 여유롭구나 속으로 거듭 감탄하며 걷는다. 조식당으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신문을 확보하고 떼타릭을 한 잔 주문한다. 떼타릭을 내리는 남자는 뽐내듯 오른손과 왼손을 머리 위로 재빠르게 교차해 올리면서 차를 쭉쭉 늘린다.

 

멀리서보면 황토색 국수를 뽑는듯 엿가락을 늘리듯 액체를 자유롭게 가지고 논다. 내가 사는 도시에 떼타릭 가게를 열면 어떨까? 아직 떼타릭을 파는 가게는 본 적 없단 말이지. 그러려면 먼저 기술을 연마해야겠지? 저 남자를 사부로 모시고 떼타릭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할까? 카야토스트도 같이 팔아야겠지? 장사가 잘 될까? 입소문 나고 대박나서 체인점 내달라고 난리나는 거 아냐?

 

포브스지에 아시아 신흥재벌로 인터뷰 하고 막... ㅋㅋㅋ거리며 혼자 실실 웃고 있는 나.

 

"엄마. 뭐 해?" 소리에 다시 화들짝 현실로 돌아오는 나.

 

밥을 먹고 룸으로 돌아와 짐을 꾸린다. 가방을 풀었다 챙겼다 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진력이 난다. 이제 레지던스로 가면 당분간은 보따리 행상처럼 짐을 꾸리며 돌아다니지는 않겠다 싶었다.

 

조호바루에서 한 달 머물 곳으로는 신도시에 있는 레지던스형 호텔 프레이저 플레이스로 계약했다. 편의시설이 좀 더 촘촘히 있는 에코 쪽으로 숙소를 잡고 싶었으나 인기 많은 곳은 늘 그렇듯 몇 달 전부터 마감이었다.

 

사전에 탐사해보니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고 수영장이 있으며 간단한 취사를 할 수 있는곳으로 찾다 보니 이곳으로 확정하게 되었다. 호텔 뒤편으로 마트와 식당 같은 생활시설들이 있었고 특히 호텔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항구 사진들이 내 마음을 끌었다.

 

정박해 있는 하얀 요트들과 쨍한 파랑의 바다. 돛에서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 매일 아침 이 풍경을 본다면 다른 조건들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랩을 호출해 숙소로 가는 길. 아이들은 엄마 이제 우리집으로 가는거야? 신난다. 수영장 있지? 매일 수영해도 되는거야? 와. 진짜 신난다. 호텔이면 매일매일 뷔페 먹는거야? 라고 끝도 없는 질문을 쏟아부었다.

 

구도심에서 신도시까지는 편도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논밭과 오래된 주택과 단층의 가게들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풍경을 달렸다. 한국의 80년대 후반 같은 구도심의 풍경들이 지루하게 눈앞을 지나쳐갔다.

 

신도시에 이르자 고층 건물들이 줄이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텔과 콘도, 고층 상업빌딩들이 드문드문 나타났고 도로는 횡하게 넓은데 차들은 몇 없어 한산하였다.

 

하얀색 외관의 호텔 정문에 도착하니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고 짐을 받아갔다.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이름을 말하고 키를 받은 후 배정된 6층의 숙소로 들어섰다. 넓은 거실 너머 녹색의 강이 범람하듯 눈에 들어왔다. 거실과 이어진 부엌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일체형이 있었고 작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딸려 있었다.

 

킹 사이즈 침대는 셋이 잘만큼 넓었고 큰 방에 딸린 욕조가 매우 큼직해서 매일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겠다 싶어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3인용 패브릭 소파가 있었고 거실과 방에 각각 티비가 한 대씩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 데크가 깔린 작은 베란다로 나가니 풀냄새가 섞인 뜨끈한 바람이 불어오고 탁 트인 전망으로 바다와 이어진 시퍼런 리버뷰가 펼쳐졌다.

 

일단은 만족스러웠다. 한달간 생활할 조호바루의 우리집. <15화에 계속>

 

 


 

image

 

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