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15)] 백 개의 요리를 파는 '마나 까페'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4.13 05:15 ㅣ 수정 : 2024.04.13 09:12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인 '마나 카페', 조호바루의 '김밥천국'이라고나 할까
주문을 마치고 나서 호텔에 지갑을 두고온 사실을 깨달아, 20분만에 지갑을 찾아 귀환
음식들은 식어버렸지만 수다를 떨며 깨끗이 접시를 비워, 가격은 모두 한화로 2만 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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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길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옷장과 싱크대에 짐을 대충 넣어놓고 컨시어지에 요청해 거실과 침실에 깔린 무겁고 털이 많은 카펫을 치워달라 요청했다.

 

큰 짐만 대강 정리했는데도 어느새 오후. 묶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찾아보니 인근에 Mana Cafe 라는 식당이 있었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저렴한 가격에 메뉴가 무려 100가지에 이른다고 하였다. 백 개의 메뉴라니! 모든 고객의 니즈를 꿰뚫고 말겠다는 야심찬 구성이다.

 

조호바루의 김밥천국이라고나 할까. 바깥은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으슬으슬 춥기까지. 꼭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았다. 우산을 쓰고 식당을 찾아나섰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노출된 공사장을 지나 부슬비를 뚫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우리들. 그나마 열대의 야자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어 삭막한 풍경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 주었다. 15분쯤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조금전의 우울했던 풍경이 돌변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비큐가 보였다. 수북하게 탑처럼 쌓인 연두색 코코넛 더미들. 직원들이 마테체 같은 칼로 코코넛 머리만 날려 빨대를 꽂아 서빙하고 있었다.

 

쿵짝쿵짝. 그루브를 타며 어깨가 주인의 뜻과 관계없이 들썩거렸다. 파라솔이 쳐진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에 앉으니 건장한 체격의 입술이 프랑크 소세지 같은 웨이터가 메뉴판을 던져주고 갔다.

 

실내좌석에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뷔페형식으로 반찬이 차려져 있었는데 등푸른 생선구이와 고기볶음, 기름에 볶은 야채와 커리, 쌀밥과 가늘고 노란 볶음국수 등등이 스텐레스 용기에 얌전하게 담겨 있었다.

 

메뉴판에는 촘촘한 영어로 엄청나게 많은 메뉴가 나열되어 있었다. 낯설은 이름들이 간택을 원하며 범람했다. 셋이서 머리를 모아 브레인 스토밍 끝에, 볶음밥과 치킨 커리, 마늘밥, 파인애플 주스, 똠얌 씨푸드, 볶음 국수를 주문했다.

 

다소 흐뭇한 기분으로 리듬을 타며 하릴없이 파리를 쫓으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벼락같이 들이치는 불안감.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목숨같은 지갑을, 신체의 일부분처럼 늘 목에 걸고 다니던 지갑을 두고 오다니!

 

트레블 월렛도 주머니에 없었다. 삼성페이가 될 리도 만무하고, 폰뱅킹을 해줄수도 없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나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지갑이 없다며 이실직고를 하였고, 금방 숙소로 달려갔다 올테니 음식이 나오면 먹고 있으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애들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비를 뚫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진심을 다해 전력으로 질주하였다. 초등학교 백미터 달리기 이후로 그토록 열심히 달리기는 처음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염려되어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경보로 걷다가 다시 미친 듯이 달리기를 번복, 약 20분 만에 지갑을 찾아 귀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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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까페 / 사진=윤혜영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에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앉아있다가 엄마가 돌아오자 비로소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였다. 식도락은 요리도 5할이지만 기분이 나머지 5할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불안감은 맛을 감쇄시킨다.

 

비로소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들은 이미 식어버렸지만 수다를 떨며 깨끗이 접시를 비웠다. 가격은 모두 다해서 한화로 2만 1900원이었다.

 

다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티가 레지던스에 입점해 있는 Fresh mart로 가서 물과 과일, 과자 등등을 샀다. 생수는 보통 Spritz사의 생수를 마시는데 6리터 짜리 생수 한통을 사서 디스펜서에 끼워서 사용한다. 생수 디스펜서는 Spritz홈페이지에서 구매하거나 마트에서 구입해야 한다.

 

조호바루는 과일이 정말로 다양하고 저렴하며 맛도 좋다. 과일의 낙원이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마트에도 과일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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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바루 Fresh mart / 사진=윤혜영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망고와 잭 프룻을 쓸어 담았다. 망고야 워낙 호불호가 없는 과일이고, 잭 프룻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열대 과일인데 노란 꽃잎같은 도톰한 과육이 젤리처럼 쫀득하고 씹으면 연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한국에는 수입하지 않기에 열대지방에 가면 최대한 많이 먹고 와야 한다. 말린 잭프룻도 있으나 생과와는 맛과 질감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서 추천하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는 것도 즐겁지만 생수와 같은 무거운 물건들이 많다면 그랩으로 배달하는 편이 간편하다. 마트 배달 뿐만 아니라 빵집이나 음식점 등의 배달도 그랩을 애용하였는데 배달비는 보통 4~5RM정도로 매우 저렴하고 오토바이로 신속하게 배달해준다. 조호바루에 있는 동안 하루에 한 번 꼴로 그랩마트나 배달음식을 이용하였다. <1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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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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