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K-Sapience (31)] 한국의 개신교 보수화① 미군정과 개신교의 운명적 만남
민병두 입력 : 2024.09.23 16:00 ㅣ 수정 : 2024.09.24 08:07
개신교 보수파에서는 미국과의 만남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해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개신교는 한국 보수주의정치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정당(국민의 힘) - 뉴라이트 - 개신교’ 3각편대를 이루고 있다. 1989년 보수교단을 총망라해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설립되고 2003년 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이승만 시절 부터 보수 정권을 지원하면서도 겉으로는 성속이원론(聖俗=元論)을 표방하던데서 벗어나 현실정치에 대한 개입을 선언했다.
비슷한 시기에 주사파가 전향한 뉴라이트가 출범했다. 둘은 상호연대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개신교 우파(christian right)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조직화를 한 것이 1979년. ‘도덕적 다수’가 결성되어 행동하던 흐름이 수입되었다. 개신교우파는 지금 뉴라이트 청년을 양산하는 사관학교 기능까지 맡고 있다.
우리의 질문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해방 직후 남한 인구의 2,3% 안팎이었던 개신교가 어떻게 최대종교가 되었냐 하는 점이다. 개신교는 통계청 조사로 2015년에 인구대비 19.74%, 967만명의 성도를 확보해 최대종교로 부상했다. 둘째는 개신교가 어떤 연유로 친미 반공 반북이라는 3대가치와 친일 반중 친이스라엘이라는 보조가치로 단일화되었냐 하는 의문이다.
개신교보수주의 뿌리는 미 군정과 이승만정부, 한국전쟁과 월남 기독교인이다. 미 군정의 반공기독교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에 영어가 가능한 유학파 기독교인들이 응집했다.가장 강한 교세를 갖고 있었던 평양의 기독교인들의 대거 월남은 기독교국가 건설의 지원군이 되었다. 이승만은 기독교국가로 가기위한 로드맵을 실천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개신교와 반공주의가 하나로 결합했다.
박정희 시대에 대규모 반공집회를 통해서 교세를 성장시켰다. 2000년대에 들어서 한때 교세가 정점을 찍었지만 태극기집회(정치행동) 예수천국(불신지옥), 번영종교(기복신앙)과 함께 개신교의 3대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영향력이 하락하고 있다. (이 글은 개신교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어서 하느님이라는 표기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표기를 선택했다)
미군정과 개신교
해방직후 미군정청은 공인교(公認教) 정책을 시행했다. 공인교 정책이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종교에만 각종 혜택을 주는 정책이다. 실질적으로는 교세가 컸던 유교 불교 천도교 대종교 무교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만을 공인했다
1945년 10월 미군정청은 일제 때 경축일을 폐지하고 미국의 축제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되었다. 부처님 오신날이 공휴일이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1975년이다. 심지어 미국의 독립기념일 (7월 4일)도 평화기념일 등과 함께 남한의 5대 축제일이 되었다.
미군정청은 영어를 공용어로 선포했다. 영어와 번역한 한국어의 불일치가 생길 경우에는 영어를 기본으로 했다. 한국어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육용 언어이고 영어는 정부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영어가 권력이 되었다. 400명 가까운 영어 통역관은 대개 친일 지주의 자녀로 유학을 다녀온 자,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한 자들이었다.
“미군정 초기의 고문정치에서 개신교 신자들은 군정 최고 책임자 주변에 포진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 중장의 통역 겸 비서실장을 지낸 이묘목, 군정장관 비서장과 민정장관 보좌관을 지낸 이교선은 핵심적인 사람들이고, 윤보선, 전용선 목사, 이매리 양주삼 목사 등이 중앙행정기관에서, 김광현 목사, 정기원 김정기 등은 지방행정기관에서 고문으로 활약했다.” <강인철 박사학위논문 ‘한국기독교회와 국가 시민사회’>
강인철의 논문에 따르면 미군정이 임명한 11명의 행정고문 중에서 목사 3명을 포함한 6명(55%)이 개신교 신자다. 1946년 미군정의 최고위직에 임명된 한국인 50명 가운데 35명이 기독교 신자였다. 제헌의회가 만들어지기까지 대의기구 역할을 했던 과도 입법의원 90명 가운데 21명이 개신교 신자였다. 초대 입법의원 190명 중 38명(목사 13명 포함)이 개신교인이었다. 미군정 당시 남한의 인구가 2천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해 45만명 정도, 인구의 2,3%인데 이에 비하면 과다비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직후 미군정은 적산(일제의 부동산과 재산)을 처분했다. 적산기업 적산가옥 적산종교시설을 불하했다. 이중 신사와 천리교 등 일제의 종교자산 대부분을 개신교에 몰아줬다. 천리교는 일본에서 유입된 종교로 식민지 시절 교세가 커서 재산도 많았다. 1947년 9월19일 조선불교중앙총무원장 김법린은 군정청재 산관리관에게 “당연히 불교계에 이양되어야 할 일본 불교적산이 하등의 연고 없는 단체 또는 개인에 의해 불법점거 또는 부적당하게 이양되어 있으며 이미 점유중에 있거나 임대차계약 완료된 재산까지도 다른 곳으로 이양되어 있다”는 항의공문을 보냈다. 해방직후 불교계가 관리하던 40여개의 일본 천리교 사원 가운데 30여개가 교회와 유관기관에 이양됐다.
한경직 목사의 영락교회, 김재준 목사의 경동교회, 송창근 목사의 성남교회 등 대형교회들과 주요 신학대들 대부분이 천리교 자산의 특혜 배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방 후 일본신사나 일본사원 자리가 예수교 예배당 혹은 교회 학교로 변모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인 동시에 기독교의 승리이며, 한국교회의 광영이며 사교(邪敎)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라고 개신교측에서는 의미를 부여했다. 대교회주의가 이때에 만들어졌다. 대교회는 ‘하나님의 은사의 징표’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했지, 대교회를 세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미군정 고위관리들은 남한을 기독교 국가화 하여 소련에 맞선다는 점령지 건설 원칙을 갖고 있었다. 이같은 원칙은 1947년 10월9일 군정장관 대리 헬맥이 로마 교황청 사절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건국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환영사를 한데서 잘 드러난다.
일제시대 일본불교가 전담했던 형무소 교화사업도 목사만 참여켰다. 형목(荊牧) 제도는 목사가 공무원 자격을 획득하여 전국 18개 형무소 교무과장직을 맡는 정도로 까지 발전했다. 개신교가 독점하다시피 하던 형목은 1961년에서야 타종교에도 개방됐다. 형목(교도소 선교) 군목(군대 선교) 경목(유치장 선교)이 중요한 이유는 어려운 환경하에서 사람들이 회심을 하게 되고, 그들의 회심이 사람들에게 주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볼 때는 외진 곳이지만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영혼을 구제해주는 것을 물론이고 선교의 블루오션이다.그 블루오션을 특정 종교에 몰아준 것이다.
개신교는 1947년 3월부터 매 일요일마다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HLKA)을 통해 선교 방송을 내보내게 하면서 개신교를 우대했다. 선교방송은 다른 종교들에게도 허용이 되었다. 다른 종교는 월 2-3회 선교방송의 기회를 가졌지만 개신교는 매주 방송을 할 수 있었다. 서울중앙방송은 일제 때 부터 국영방송의 역할을 했다. 일황의 항복선언도 이 방송을 통해 들었다. 국영방송 같은 위상을 갖고 있어서 이 방송에 자자 노출될 수록 특정 종교가 국교 처럼 인식되는 효과를 주게된다.
이규태의 책에 보면 일제 말기에 학교에 다녀오면 형들이 이불 속에 들어가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었다. 일제가 곧 패망한다는 소리를 듣고, 이 얘기를 밖에 나가서 했다가 혼쭐이 났다는 회고가 있다. 당시 이승만도 주기적으로 방송을 했는데, 해방 정국에서 이승만이 대통령감이라는 인식을 굳히게 하는데 방송이 기여했다. 그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은 크다. 가톨릭에는 경향신문사를 불하했다. 경향신문은 이승만 시대에 대표적인 야당지가 되었다.
한반도 5천년의 역사에서 문명은 인도와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종교적으로나 문명적으로나 동양에 속해 있었다. 한반도의 분단과 미군의 점령으로 문명과 신앙의 경로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서양문명 특히 미국문명과 기독교가 하루 아침에 남한 땅을, 공산주의와 소련문화가 북한 땅을 지배했다.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개신교 보수파에서는 미국과의 만남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