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변화·혁신 요구받는 은행...체질개선 ‘골든타임’ 왔다

유한일 기자 입력 : 2025.01.11 07:15 ㅣ 수정 : 2025.01.13 08:21

5대 시중은행장, 한 목소리로 “변화·혁신해야”
수익성 둔화 우려에도 여전히 이자 중심 영업
비이자 부문 확대하고 신사업 발굴 노력 필요
거미줄 규제 혁신에 부담...제도적 뒷받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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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이어진 고금리 기조가 점차 완화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시장을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도 확대되면서 ‘좋은 시절은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안정적 실적과 기초체력 확보를 위해서는 이자 중심의 이익 구조와 사업 분야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은행권을 뒤덮고 있는 규제 장벽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뉴스투데이>는 2025년 은행권 경영 방향과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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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본점 전경. [사진=각사 / 그래픽=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을사년(乙巳年) 핵심 경영 화두로 제시한 건 ‘체질 개선’이다. 올해 본격적인 금리 하락기에 접어든 데다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업황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이 같은 환경 변화에 대응한 기초체력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우선 당면 과제는 ‘새 먹거리’ 발굴이 지목된다. 이자 중심의 이익 구조를 다변화해 지속가능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디지털 전환 흐름에 맞춘 신기술 도입과 금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작업도 필요하다. 은행들은 자체적인 노력 뿐 아니라 금융당국의 제도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불확실성 경계한 시중은행장들...조직에 ‘변화·혁신’ 주문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장들은 연초 발표한 ‘2025년 신년사’에서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올해 주요국 긴축 완화로 고금리 기조가 마무리되는 상황에 미국 신정부 출범, 국내 정세 불안으로 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데 대비해 본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이환주 국민은행장은 “‘어제의 방식으로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시선을 밖으로 돌려 ‘새로 고침’의 방식으로 오늘의 국민은행을 직시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고, 정상혁 신한은행장 역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기존의 성장 방식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혁신에 집중하겠다”고 했고, 강태영 농협은행장도 “변화와 혁신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새로운 금융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전들을 반드시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은행 체질 강화를 위한 3대 전략 중 하나로 ‘사업모델 혁신’을 제시했다. 

 


■ 이자 쌓아올린 이익...‘한 자릿수’ 비이자 비중 개선 필요 


 

은행권은 최근 몇 년간 시장금리 상승과 대출자산 확대로 역대급 실적을 이어왔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익과 직결된 대출금리가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가계부채 문제로 대출 영업도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은행의 수익성 둔화 우려를 키우고 있는 건 이익 구조에 대한 ‘혁신 부재’도 한몫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누적 영업이익 34조6870억원 중 이자이익(31조4383억원) 비중은 90.8%에 달한다. 1000원의 이익을 올리면 900원가량이 대출을 통한 이자로 채워졌다는 뜻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가 많은 이익을 내면 다들 칭찬하지만 은행은 이익을 많이 거두면 비판하는 차이가 무엇이겠느냐”며 “은행은 과연 혁신이 충분했고, 혁신을 통한 이익이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직격한 바 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씨티·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JP모건체이스·US뱅코프 등 미국 5대 은행의 영업이익 중 비(非)이자 이익 비중은 2020년 37.8%, 2021년 39.6%, 2022년 34.2%로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이 차별적인 수익성 지표를 보여주고 있는 건 수익성 높은 대출을 더 많이 취급하고, 비이자 이익 확대를 통해 이익 구조 다변화에 나선 데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가계 쪽은 가계부채 문제가 있고 기업 쪽은 건전성 우려가 있어 대출을 큰 폭으로 늘려가기 어려운 상황인데, 금리가 계속 내려가면 수익성도 나빠질 수 있다”면서 “비이자 이익을 늘려 상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안 받던 금융 수수료를 더 받겠다고 하면 고객 저항이 있을 수 있어 어려움이 따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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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중은행의 영업점 창구. [사진=연합뉴스] 

 


■ 금융 서비스 ‘질’ 높이고 비금융 사업 적극 공략 필요성 


 

은행권도 이자·비이자 부문의 균형 있는 성장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통상 은행 비이자 이익에는 입·출금, 송금, 신용카드, 신탁, 방카슈랑스 등을 제공하며 얻는 수수료와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 수익으로 구성된다. 

 

결국 은행 비이자 이익 확대는 고객에 얼마나 질 높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공산이 크다. 은행권이 주목하는 분야는 자산관리(WM)다. 다만 지난해 대규모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사태로 떨어진 고객 신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행이 파는 상품을 믿고 가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고액 자산가들과의 접점 확대로 WM 사업을 넓혀야 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비금융 시장 진출도 은행 혁신의 필수 과제로 지목된다. 특히 핀테크(금융+IT) 기업의 공습이 가속하고 있는 만큼 기성 은행들도 영토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커져가고 있다. 비금융 사업의 경우 고객 및 이익 규모 확대에 기여할 뿐 아니라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본업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민은행이 알뜰폰, 신한은행이 배달앱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다만 여전히 은행업이 ‘거미줄 규제’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비금융 신사업의 경우 초기 투입되는 인적·물적 자원에 비해 얻어지는 이익 규모가 미미하다보니 지속성 확보가 관건으로 꼽힌다. 은행권은 비금융 시장 진출이 피하지 못할 과제로 떠오른 만큼 최대한 유망한 분야를 선정해 실행하겠다는 방침이다. 

 


■ 은행권 자체 노력 중요하지만...금융 제도도 함께 혁신해야


 

은행권은 수익·사업에 대한 변화·혁신 노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금융 상품 공급으로 이익 구조 다변화에 나서고, 은행 내 신사업 발굴 전담 조직도 확대하는 흐름이다. 경쟁자로 여겨졌던 핀테크와의 협업으로 신기술 도입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행 금융 제도가 은행 혁신의 무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종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하고 있는 가운데 규제 완화에 대한 속도감은 뒤처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도 은행권 혁신을 통한 지속가능성 제고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비대면과 디지털 금융 확대에 대응한 혁신 과정에서 불가피한 단계적 점포 폐쇄에 대해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며 “은행 문화가 단기 성과 주의로 돼있는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은행은 라이선스(허가)를 받고 하는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혁신 사업을 하려고 해도 규제 안에서만 가능하고 금융당국과 협의할 부분이 쌓여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시중은행 수입의 70%가 예대마진이지만 골드만삭스는 40%만 예대마진이고 나머지는 주식, 기업공개(IPO), 투자 등에서 수익을 올린다. 은행 예대마진 비중이 낮아지면 국민의 대출 이자 부담도 낮아진다”며 “또 한국은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기관 간 장벽이 있지만 미국은 이 장벽을 허물고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했다. 우리 정부도 미국 수준으로 금융업종 간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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