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 여행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조호바루의 특색 없는 생활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비즈니스 호텔들, 틀에 박힌 호텔식 식사와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오가다 보니 말레이시아에 체류하고 있다는게 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조호바루에서 약 220km떨어진 곳에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말라카라는 도시가 있어 주말을 이용한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장거리 이동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말라카에 가면 최고의 락사가 있다고 꼬셨다. 당시 우리는 마라탕의 독특한 향취와 비슷한 느낌을 내는 락사라는 요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조호바루에서 말라카까지는 시외버스를 이용해 약 3시간. 왕복 6시간이니 당일치기 하기에는 다소 무리인듯 싶었지만 도시 자체가 작아서 바쁘게 움직이면 하루만에 가능할 것 같았다.
BusOnline앱으로 락킨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말라카행 kkkl버스표를 전날 저녁에 예매해 두었다.
아침이 오자 간단한 짐을 꾸려서 그랩을 타고 고속 버스터미널이 있는 구도심으로 갔다. 락킨 센트럴 터미널은 말레이시아 주요 도시들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규모가 방대하고 식당을 비롯한 각종 상업시설들도 많이 입점해 있었다.
문제는 너무 크다 보니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길을 잃을 수 있다. 배차시간을 잘 알아보고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가는 것이 좋으며 외국인은 매표시 여권번호를 적어야 하니 항상 사본을 지갑 같은 곳에 지참하고 있는게 좋다.
락킨 터미널의 인상은 1990년대 시골 차부 같았다. 전자식으로 바뀌어 현대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긴 하였으나 낡은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식 상점들에서 판매하는 물건들도 유행에 뒤쳐진 중국산 저가품들이었다.
편의점에 가서 아이들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고 슬슬 걸어다니다 보니 버스 탑승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탑승구를 못 찾아서 1층과 2층을 몇 번씩 오르내리며 같은 길을 오갔다.
나는 매번 왜 이럴까. 한방에 쉽게 가는 법이 없다. 어디를 갈때마다 헤매니 아이들 눈치도 보이고 이러다 차를 놓치겠다 싶어 입이 바짝 마르고 숨이 차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조바심에 동동거리든 찰라 버스 타는 곳을 찾게 되었다.
자리가 널널할거라 예상했는데 주말이어서 그런지 만석이었다. 말라카에 가려면 주말을 피하거나 시간을 넉넉히 두고 예매해야 한다는걸 깨달았다.
버스의 미세한 떨림까지 오롯이 전달되는 뒷자리는 다소 불편했지만 버스를 찾는답시고 많이 걸어 피곤했고 말라카까지 가는 1차선의 간선도로는 복붙하듯 앙상한 나무와 벌판뿐인 풍경이라 풍경을 조금 바라보다가 잠에 빠져버렸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번 멈춘 것 같기도 한데 바닥으로 한없이 끌려가듯 몸이 쳐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평평한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커브를 틀고 턱을 넘으며 탕탕 거렸다. 승객들이 부시럭거리며 짐을 챙기는 것을 보니 도착이 가까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버스는 정확히 3시간 만에 말라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승객들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짐을 챙겨서 각자의 방향으로 재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말라카 버스 정류장은 오래 앓은 환자처럼 건조하고 파리한 인상이었다.
갑자기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찾아 갔는데 뚱뚱한 사내가 목욕탕 의자에 퍼질러 앉아서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낡고 조그마한 책상 위에 종이상자로 만든 돈통과 화장실 이용료를 볼펜으로 대충 써서 붙여놓았다.
세상과 타협할 수 없다는 험악한 표정의 그 사내는 눈을 질끈 감고 시멘트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의 엉덩이를 받치기에는 너무나 작은 목욕탕 의자가 곧 찌그러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요의가 더 위태로웠다. 현금이 없었는데 낭패였다. 나는 지갑을 뒤지며 발을 종종거리며 급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사내는 굳게 닫은 눈꺼풀을 움직이지 않았다. 서서 싸든지 바지에 지리든지 내알바 아니라는 냉랭함이 느껴졌다.
바지 주머니를 뒤지고 가방 바닥을 긁어 간신히 동전을 찾아 종이상자에 투여했다. 쭈그려 앉아야 하는 변기 주변은 먼저 사용한 이들이 남기고 간 지린내가 응축되어 있었다. 이용료를 받으면 시설 관리는 기본 아닌가.
돈 주고 뺨 맞은 기분으로 바지를 추스르고 화장실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그랩을 호출해 네덜란드 광장이 있는 더치스퀘어에 가자고 했다. 일단은 여기가 시작점이다.
네덜란드 광장은 17세기에 세워진 총독관저, 분수대와 시계탑이 몰려있는 곳으로 붉은색의 그리스도 교회가 상징적이다. 당시에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돌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적갈색 건물은 이질적이고도 생경하지만 그래서 독보적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보았다.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제단 앞에 최후의 만찬 성화가 눈에 띄었다. 시끌한 바깥과는 대비적으로 성당 안은 매우 고요했다.
성당 옆 성물방에 묵주나 기도서 같은 것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1511년 포르투칼의 침략을 시점으로 1641년에는 네덜란드, 1824년에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흔적이 남아있는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의 유서깊은 역사도시로 손꼽히며. 200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덜란드 광장. 바로 맞은편 골목엔 중국인 거리. 리틀 인디아, 힌두 사원과 중국 사원, 거리를 가득 메운 무슬림 혹은 인도, 중국인들.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온 이질적인 문화들이 섞여들며 복잡미묘한 인상을 자아내는 말라카의 거리였다. 1753년에 깔린 포석 위로 미니언즈와 헬로키티로 단장한 트라이쇼가 달린다.
조금 걷다보니 포르투칼인들이 세운 세인트 폴 성당이 있었다. 건물이 다 부서지고 벽만 남아 있었다. 마카오의 세인트 폴 성당도 무너진 채 벽만 남아 있는데 콜로니얼 시대의 흔적이 남긴 문화유산으로 같은 이름 다른 지역의 쌍둥이 성당이다.
허기가 느껴져 이곳에 온 최대 목적인 락사를 먹기 위해 존커 88부터 찾기로 했다. 현지 맛집으로 이름난 이 식당은 중국인 거리인 잘란 항제밧에 위치해 있었는데 잘란(Jalan)은 골목길, 항제밧은 말레이시아의 역사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뜻한다.
존커 스트릿으로 부르기도 한다. 좁은 이면도로를 중심에 두고 다채로운 색깔의 숍 하우스들이 촘촘하게 펼쳐져 있었다. 숍 하우스는 폭이 좁고 긴 2층 집을 일컫는데 중국인 거리의 대부분의 집들이 이런 형태이다.
주말 이어서 거리는 인산인해였다. 우리 셋은 파도치는 인파에 휩쓸려가며 손을 꼭 잡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거 88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풍으로 치장된 건물 내부에는 빽빽하게 손님들이 들어차 있어 이쑤시개 꽂을 자리도 없어 보였다. 종업원들은 신들린 듯 발 빠르게 날라다녔고 아무도 어서오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눈치를 보며 내부로 들어섰다.
양손에 요리를 들고 가던 종업원 한명이 우리에게 테이블을 안내했는데 통로 구석에 벽을 보고 세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플라스틱 의자에 쪼르르 앉았다. 잔칫집 거지를 대하는 태도였지만 업장 분위기가 불평을 하고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주문방식도 가져오는 것도 모두 셀프였다. 락사를 먹기 위해 왔기에 다른 메뉴는 쳐다보지도 않고 뇨냐 락사. 바바 락사를 한 그릇씩 주문했다.
중국, 인도, 말레이의 식문화가 한 그릇 요리로 탄생한 퓨전 요리 ‘락사’
락사는 뇨냐 음식으로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중국인을 뜻하는 페리나칸(Peranakan Chinese)의 자손 중 여인인 뇨냐(Nyonya)들이 현지 재료와 중국의 요리법으로 만들어낸 요리 문화를 말한다. 참고로 남성은 바바라고 부른다.
락사는 금방 나왔고 시고 달고 얼큰한 국물 속에 얇은 면이 잠겨 있었다. 짬뽕이나 탄탄면과 비슷한 맛이 나지만 더 가볍고 향긋하다. 코코넛 밀크의 고소함과 생선 육수의 묵직함, 레몬그라스와 라임의 새콤함이 섞이며 오묘한 국물 맛을 낸다.
말레이시아 요리는 타마린드를 많이 쓰는데 이것이 락사맛을 특별히 만드는 써커 펀치라는 생각이 든다. 껍질콩처럼 생긴 타마린드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쨍하게 새콤한 맛이 특징이다.
뜨거운 락사를 먹었으니 시원한 첸돌로 입가심을 해야 한다. 첸돌은 잘게 부순 얼음에 굴라말라카(팜 설탕)를 끼얹고 초록색 지렁이 모양 젤리인 첸돌을 올린 빙과류 디저트이다.
첸돌은 따로 주문하는 곳이 있었다. 건물의 안쪽에 중정 같은 곳이 있었고 그 곳에서 남녀 두 명이 첸돌을 만들고 있었는데 한 명은 얼음을 갈고 한 명은 토핑을 얹고 있었다.
이곳 역시 줄이 길었고 얼음 베이스에 기호에 맞게 토핑의 종류를 고르는 식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종업원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뭐라뭐라 물어보는데 말을 할 줄 몰랐기에 문장이 의문형으로 끝나면 눈치껏 고개를 끄덕거려 주고 첸돌 한 그릇을 받아들고 자리에 돌아왔다. 부드러운 얼음 셔벗 위에 갈색의 달콤한 굴라말라카가 뿌려져 있었고 첸돌이 고명으로 올려져 있는 기본 첸돌이다.
나는 이 굴라말라카를 매우 좋아하여 말레이시아 여행을 가면 꼭 사오고 지인들에게도 선물한다. 가격이 저렴면서 맛도 좋기 때문이다. 현지 마트에 가면 비닐 봉지에 갈색의 둥글넙적한 굴라말라카를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 코코넛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을 대나무 통에 넣고 끓여서 굳히기에 이런 모양이 나온다. 특유의 향이 있어서 커피를 마실때나 빵이나 과자를 구울 때 다양하게 사용한다.
락사와 첸돌을 맛있게 먹고 거리로 나왔다. 쏟아지는 햇빛과 밀물처럼 쓸려오는 인파들을 바라보며 서있다가 무엇을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애초에 락사 때문에 말라카까지 왔기 때문에 다른 계획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도 덥고 배도 부르니 유람 삼아 말라카 강을 한바퀴 도는 리버크루즈나 타자고 했다.
고풍스러운 숍 하우스를 지나니 강이 확 펼쳐졌고 벽화들이 그려진 나지막한 상점과 주택들이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중국의 쑤저우를 연상케 하는 물과 도시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강바람에 물비린내가 실려왔다. 강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 보니 이삭 토스트가 보였다. 한국에서 가끔 먹던 이것을 말라카에서 만나다니 깜짝 놀라 가게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식사를 했지만 말라카산 이삭토스트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수양버들 아래 놓인 파라솔 밑에 자리를 잡고 햄치즈 토스트를 주문했다. 현지인 남성 두 명이 의논을 해가며 십분이 넘게 재료를 주무르고 있었다.
저렇게 손이 느려서야 주문이 밀리면 어떻게 대처하려나, 나는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해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대신 만들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안절부절했다. 약 십오분이 흐른 뒤 양배추와 햄치즈를 넣은 토스트가 나왔는데 속을 두텁게 넣어 맛은 괜찮았다.
리버 크루즈는 정시마다 출발한다고 하여 시간이 촉박했기에 토스트를 씹어먹으며 뛰듯이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32화에 계속>
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