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출시장 온기 돌까...은행권, 문턱 낮추지만 ‘총량 관리’ 부담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제한 완화 움직임
고강도 억제 정책 영향 잔액 증가 둔화해
총량 관리로 보수적 대출 태도 유지할 듯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에 동참해 온 은행권이 다시 대출 문턱을 낮추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을 비롯한 각종 조치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영업 재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또 해가 바뀌면 은행이 내줄 수 있는 대출 총량이 초기화된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다만 역대급 가계부채 잔액과 조기 한도 소진 우려를 고려했을 때 공격적인 대출 취급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내년 1월 2일부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취급하기로 결정했다. 임대인의 소유권 이전과 선순위 근저당 감액 말소, 신탁 등기 말소 등 대출 실행 당일 등기 접수증을 보완 취급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또 이달 30일부터는 비대면 직장인 신용대출 4종의 판매를 재개할 계획이다.
앞서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5일부터 최대 1억원이었던 생활 안정 목적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2억원으로 확대했다. 또 타행 주담대를 국민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2일부터 내년 대출 실행 건에 한해 비대면 주담대와 전세대출 판매를 시작했고, 우리은행은 오는 23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 등 비대면 부동산 금융 상품 8종의 판매를 재개한다.
신한은행도 지난 17일부터 생활 안정 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2억원으로 늘렸다. 또 그동안 중단했던 주담대의 모기지보험(MCI) 취급을 재개하고, 대출 모집인을 통한 대출도 다시 접수한다. 아울러 미등기된 신규 분양 물건지에 대한 전세대출과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을 각각 재개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연일 역대 최대 규모를 갈아치우자 지난 7월쯤부터 강도 높은 가계부채 억제에 나섰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금리 인상과 비대면 취급 제한 등의 조치로 대출 문턱을 높였다. 연말 들어 은행권의 대출 제한이 속속 완화되고 있는 건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141조4000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1조9000억원 증가했다. 증가 흐름은 8개월 째 이어졌지만 증가폭은 9월(5조6000억원)과 10월(3조8000억원)에 이어 크게 축소된 모습이다. 특히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하던 주담대 증가폭은 10월 3조6000억원에서 11월 1조5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내년 대출 관리 총량이 초기화되는 점도 은행들의 영업 재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에 매년 취급할 대출 목표치를 제출하고 이를 이행한다. 올해의 경우 부동산 시장 회복과 시장금리 하락 등의 영향으로 총량을 초과했기 때문에 연말 고강도 대출 옥죄기가 시행됐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서 관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는 만큼 실수요자 등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가계 자금 공급 필요성을 더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을 면밀히 고려해 서민·취약계층 및 지방자금 공급 등에 차질이 없도록 유연하고 세심한 가계대출 관리를 추진하라”고 당부했다.
다만 은행들이 당장 내년 초부터 대출 태도를 크게 완화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가계대출 잔액 증가세가 둔화되긴 했지만 잔액은 여전히 큰 수준인 데다, 연초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 경우 하반기 들어 총량 소진 우려로 대출 대란이 재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은행 대출이 특정 시기에 집중 취급되지 않도록 내년부터 월별·분기별로 현황 점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연말 경영 전략 회의에서 가계대출 관리와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여신 담당 부서끼리도 서로 논의하며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라며 “주담대의 경우 이사철에 수요가 반짝 몰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걸 감안해서 목표 설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도 은행들과 소통해 유연하게 관리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투기적인 수요 빼고는 대부분의 대출 제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했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실수요자들도 체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다만 올해 연말 가계대출 잔액이 급증하면서 대부분 은행이 취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학습효과로 월별이나 분기별로 타이트하게 관리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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