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교영 기자 입력 : 2025.01.16 05:00 ㅣ 수정 : 2025.01.17 07:02
美, 중국 조선·해운업에 제재 카드 만지작...국내업계에 호재 국내 조선업계 수주잔량 160조원...향후 '4년간 먹거리' 확보 LNG 운반선 수주 부문에서 9년 연속 세계 1위 차지 '기염' 국내 조선 '빅3' 13년만에 동반 흑자 위업 달성 '눈앞'
2025년은 연초부터 나라 안팎으로 어지러운 형국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탄핵 정국을 맞았다. 그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에 가까워지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또한 이달 20일(현지시간)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외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통상 전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내수 부진에 따른 불황 등 악재가 겹쳐 올해 기업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이에 따라 <뉴스투데이>는 새해 벽두부터 대내외 변수가 난무하는 을사년(乙巳年) 산업별 시장을 분석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빅3'가 길었던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올해 실적호조를 거머쥘 전망이다.
이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강화된 환경 규제에 따른 친환경 선박 발주 증가, 미국 해군 유지·유지·보수·정비(MRO) 확대 등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조선·해운업을 장악하기 위해 불공정 수단을 동원해왔다며 미국 정부가 최근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국내 조선업계가 반사 이익을 누릴 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 향후 4년치 일감 확보…지난해 수출액 7년 만에 최대
1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조선' 수주잔량은 약 1100억달러(약 160조5230억원)다. 이는 금액 기준으로 지난 2009년 이후 최대 규모이다. 수주잔량은 3716만 CGT로 약 4년치 일감에 해당한다.
지난해 조선업계 수출 성적표도 7년 만에 최대치다. 2024년 K조선 수출액은 256억3000만달러(약 37조3993억원)로 2023년 대비 17.6% 증가했다.
양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보여주듯 국내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부문에서 9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해 대형·고부가 중심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LNG선 발주량 554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가운데 한국이 441만CGT(80%)를 수주했다.
한국이 전체 선박 수주 규모에서 중국에 밀리지만 LNG선과 같은 고부가 가치 수주에서는 독보적 역량을 보여 수익성은 개선됐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 빅3는 지난해 13년 만에 동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는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 1조4317억원 △삼성중공업 4743억원 △한화오션 165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전망했다.
■ IMO '넷제로' 추진…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IMO는 오는 2050년까지 모든 선박에서 탄소 배출량을 모두 제거하는 '넷제로' 목표를 공식적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중간 목표로 2008년 대비 연간 국제해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소 20% 감축(최대 30% 노력) △2040년까지 최소 70% 감축(최대 80% 노력) 등을 정해 단계적 감축을 추진중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면 LNG 또는 암모니아선과 같은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들 친환경 선박은 연료 보존 등을 위해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관련 기술을 갖추고 이미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이 유리한 상황이다.
LNG는 다른 친환경 에너지원보다 공급 안정성이 높고 가격도 예측 가능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암모니아는 수소로 전환되기 직전 연료원이다. 이에 따라 암모니아는 연소할 때 황산화물과 이산화탄소 등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무탄소 대체 연료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넷제로 추진으로 2050년까지 선박 연료의 45%가 암모니아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 빅3는 올해 암모니아 추진선 상용화를 목표로 암모니아 연료 추진 선박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3년 10월 세계 최초로 암모니아 추진선을 수주했다. 당시 HD한국조선해양은 그해 3월 벨기에 해운사 엑스마르에서 수주한 4만5000㎥급 중형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에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엔진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또한 HD한국조선해양은 암모니아 연료 독성가스 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줄이는 일체형 암모니아 스크러버(황산화물 저감장치) 등 친환경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의 주요 계열사 HD현대중공업은 이를 적용한 세계 첫 고압 직분사 방식 암모니아 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고압 직분사 방식은 엔진 연소실에서 공기를 압축한 후 높은 압력으로 암모니아 연료를 분사해 연소하는 방식"이라며 "엔진 출력과 연료 효율은 높이고 이산화질소 등 온실가스 배출은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질세라 삼성중공업은 미국 선급(ABS)으로부터 '부유식 블루 암모니아 생산설비' 개념 인증(AiP)을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 또한 유럽연합(EU) 선급들로부터 93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암모니아 추진 컨테이너선, 차세대 LNG 운반선 개념 인증도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삼성중공업은 독일의 유명 선박 엔진업체 '만-에너지 솔루션'과 암모니아 엔진 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경남 거제조선소 400평 부지에 암모니아 실증 설비를 구축했다. 이곳에서 삼성중공업은 암모니아 추진 선박 적용에 필요한 연료공급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고도화에 나설 방침이다.
한화오션은 업계 최초로 차세대 무탄소 추진 LNG 운반선 '오션1'을 선보여 눈길을 모았다. 이 선박은 암모니아 기반 전기추진 방식을 채택해 화석연료 없이 완전 무탄소 추진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현재 선박 연료로 널리 사용되는 LNG와 혼소도 가능하며 향후 연료전지와 배터리 기술을 탑재할 수 있는 유연성도 갖췄다.
한화오션은 또 글로벌 에너지 장비업체 한화파워시스템과 손잡고 현재 운항 중인 선박에 적용된 화석연료 엔진을 암모니아 가스터빈으로 대체하는 친환경 솔루션도 선보였다. 아울러 ABS와 정량적 위험도 평가를 통해 암모니아 확산 안전성 검증도 마쳤다.
■트럼프 2기 출범에 MRO 사업 확대 기대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도 국내 조선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 조선업은 한국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며 “한국의 세계적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 선박 수출 뿐만 아니라 MRO 분야에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따라 조선업계는 관련 시장 공략 채비에 나선 상태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MRO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과 조선분야 협력은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라며 "차분하게 대응해 실익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오갑 회장은 또 “우리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해 국가대표 K-조선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며 그 핵심은 '기술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최근 MRO 등 새로운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연구개발(R&D)·인력·소부장 지원 등 조선업 지원 방안을 담은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또한 최근 미국을 방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토드 영(공화·인대애나) 상원의원을 만나 한미 조선 협력을 논의했다. 토드 영 의원은 미국 조선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선박법'을 공동 발의했다.
안덕근 장관은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조선산업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설명하고 향후 미국 관련 법안과 정책 형성 과정에 지속 소통하며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 국내 조선소 최초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함' MRO를 수주하고 11월에는 '유콘함' 정기 수리 사업까지 따내 지난해 미 해군 발주 MRO 사업 2건을 모두 맡았다.
여기에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로 북미 조선 및 방산 시장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미국 조선소 인수한 것은 한화그룹이 최초다.
미국이 이처럼 K조선에 러브콜을 보내는 가운데 중국에 대한 견제를 예고해 국내 조선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변수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이 조선·해운을 '장악 목표 산업'으로 삼고 자국 산업에 특혜를 몰아준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USTR은 지난해 4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중국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외국 기업에 대한 장벽 강화, 강제적인 기술 이전과 지식재산권 탈취 등 불공정 수단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이를 통해 글로벌 조선 산업 점유율을 2000년 약 5%에서 2023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반면 미국의 점유율은 1% 아래로 추락했다. 미국 조선소는 1980년대 300여개에서 현재 20개로 줄어든 상황이다.
조사 결과가 공식 발표되면 관세 부과나 중국 건조 선박에 대한 항구 이용료 등 제재가 예상되는 가운데 미 의회도 중국 조선업 견제에 나섰다.
상원의 마크 켈리(민주·애리조나)와 토드 영 의원, 하원의 존 가라멘디(민주·캘리포니아)와 트렌드 켈리(공화·미시시피) 의원은 지난달 19일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장려하고 조선업 기반 강화, 미국 선적 상선을 대폭 늘려 '전략상선단'을 운영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한 외국에서 건조한 상선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미국 정부가 동맹 및 전략적 파트너와 함께 전시에 필요한 해상 수송 능력을 보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계는 이러한 움직임이 미 조선 협력의 기회로 눈여겨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