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민주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하인들은 왜 국부를 왼손으로 가렸나
"좌천(左遷)되다“는 표현은 뿌리깊은 존우비좌(尊右卑左) 사상에서 비롯돼
서구사상의 뿌리인 성경 창세기에서도 아담의 왼쪽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어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의회에서도 오른쪽에 온건공화파, 왼쪽에 급진공화파 앉아
19세기말 20세기 초에는 왼손 차별 심해져, 왼손잡이 교정 위한 의술까지 도입돼
왼손잡이는 집안에서도 타박을 받고 군대에서도 타인을 방해한다며 얼차려 대상이 돼
명성황후 사주를 받은 무당이 왼손으로 활을 쏴 대원군 이름을 맞춘 것도 저주의 의미 담아
제1차세계대전은 왼손의 복권 계기... 전쟁영웅인 왼손잡이들을 폄훼하는 발언 어려워져
일상의 모든 것이 오른손잡이 문화의 결과물, 왼손잡이를 위한 다양한 상품이 나오길 기대
국회 정무위원장을 지낸 3선 국회의원 출신 민병두 보험연수원장이 한국인에 대한 예리하고도 심층적인 분석을 담은 '민병두의 K-Sapience'를 연재합니다.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으로 필력을 떨쳤던 언론인이기도 한 민 원장은 K컬처와 K푸드로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는 한국인을 'K-Sapience'라고 규정하고 그 내밀한 세계를 종횡무진 그려낼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민병두 보험연수원장] 좌천(左遷)되다. “낮은 관직이나 지위로 떨어지거나 외직으로 전근되다. 예전에 중국에서 오른쪽을 숭상하고 왼쪽을 멸시했던 데서 유래한다고 국어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오른쪽을 높이 보고, 왼쪽을 낮춰보는 존우비좌(尊右卑左) 사상은 그 뿌리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명문 가문의 성씨를 우성(右姓)이라 했고 정도(正道)를 우도(右道), 정도가 아닌 가르침을 좌도(左道)라고 했으며 학문을 숭상한다는 말을 우문(右文)한다고 했다. 심지어 머리나 관모에 손댈 일이 있으면 반드시 서열이 높은 오른손으로 하고, 머리보다 낮은 하체, 소변을 본다든가 신발을 신는 일은 서열이 낮은 왼손으로 했다고 한다.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보면 사위를 고를 때 소변 보는 것을 훔쳐보는 습속도 남들이 보지 않는데서도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가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우(右)는 귀하고 바르다, 현명하며 소중하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오면서는 옳다 바르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왼쪽은 외다, 그르다 틀리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은 시대와 국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했다.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오른쪽은 신성한 것, 해가 지는 왼쪽은 그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생각을 태양신을 믿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게 된 것이 그 연원으로 보인다.
게다가 고고인류학적 관찰에 의하면 석기시대에 돌을 깨트려서 날카롭게 하는 각도랄지, 인류가 사냥을 하면서 고기를 씹는 동작 등을 볼 때 아주 오래 전부터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약 90%가 오른손잡이였다. 따라서 당시의 의식 수준에서는 왼손잡이가 소수이다 보니 뭔가 병들었거나 잘못되었거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옳다, 그르다고 하는 것처럼 영어 문화권에서도 right(오른쪽)는 right(옳다), left(왼쪽)은 lyft(약하다, 게르만계 고대 영어)로 착하고 나쁨, 옳고 그름 등의 대립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라틴어의 dexter(솜씨가 좋은, 오른쪽) sinister(반대의, 허위의, 불리한, 왼쪽의)에서 보듯 좌우 편견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서구인의 사상과 신앙의 뿌리하고 할 수 있는 성경의 창세기에서도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아담의 오른쪽이 아닌 왼쪽 갈비뼈 하나로 이브 즉 여자를 만들었다고 왼쪽과 오른쪽을 차등화한다. 아담과 이브를 그린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등에서도 신이 금했던 무화과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따먹을 때에도 더러운 손, 왼손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렸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에도 좌도와 우도 중에서 상대적으로 착한 도적을 우도로 그리는 것이 중세 미술의 관례였다.
사도신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하늘에 오르사 전능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을 믿으며”라고 하여 오른쪽이 상석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2인자를 오른팔이라고 부른 것은 아마 사도시대 이전부터 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 제도와 정치에도 반영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인 1789년 5월5일, 성직자 귀족 평민 출신으로 구성된 ‘삼부회의’가 마지막으로 소집되었다. 이때 제3신분 대표들은 의장석에서 볼 때 왼쪽에 앉았고 성직자대표는 오른쪽에 앉았다. 프랑스 혁명 후에 1789년 처음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입헌군주제를 외친 왕당파는 오른쪽에 앉고 공화파는 왼쪽에 앉았다.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이 오른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생각을 했다.
1792년 공화파가 왕당파를 타도하고 소집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도 오른쪽에 온건공화파가, 왼쪽에는 민중을 대표하는 급진공화파가 앉으면서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정치인과 고급관료는 국가의 오른손이고, 중하급 공무원과 일반 시민들은 국가의 왼손들이라고 분류한다.
나아가서 “오른손 무한 권력의 시대에 왼손의 연대를 촉구하며 국가의 왼손들이 오른손들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왼손과 오른손-좌우 상징, 억압과 금기의 사회사. 주강현 저. 시공사) 조용현은 한자의 좌우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左는 공부할 工이 들어 있으니 새로운 사회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진보파로, 右는 입 口가 들어 있으니 먹는 것을 통제하는 기득권층 보수파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손의 불평등에 대한 언급과 문헌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베르 에르츠(Robert Hertz 1881-1915)도 ‘죽음과 오른손’이라는 저서에서 불평등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의 두손만큼 완벽하게 닮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두손은 또한 얼마나 불평등한가? 명예와 돋보이는 칭호, 특권은 오른손으로 향한다. 오른손은 행위하고 명령하고 장을 맡는다, 반대로 왼손은 멸시받고 비천하고 보조 역할을 한다. 왼손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거들고 보조하고 잠자고 있을 따름이다. 오른손은 모든 지존의 상징이자 전형이며 왼손은 모든 서민의 상징이자 전형이다”
과학이 발전한 19세기말 20세기 초에는 왼손에 대한 차별이 더욱 심해져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왼손잡이를 교정하려고 했으며 각종 교정기와 의술까지 도입됐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구한말까지 종로에서는 거마와 천민은 좌측통행을 하고 양반은 우측통행을 했다. 가르마를 할 때 왼쪽으로 기운 듯하면 불길하다고 했고, 술을 따를 때 왼손으로 하면 큰 결례였다. 지금도 그런 습속이 남아 있어서 악수할 때 왼손을 내밀면 모멸감을 느끼고, 왼손으로 돈이나 물건을 주고 받는 행위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따르면 조선조에서는 왼손을 쓰는 노비는 반값에 매매되었으며, 명성황후의 사주를 받은 무당이 대원군의 이름을 써붙여 놓고 왼손으로 활을 쏘아 맞춘 것도 저주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보면 폭우를 만난 하인들이 머리에 쓴 벙거지가 젖을까봐 옷을 벗어 오른손으로 벙거지를 덮어 누르고 왼손으로는 국부를 가리고 뛰었다고 하니 여기서도 좌우의 서열의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좌의정 우의정 순으로 서열화되어 있었으니 꼭 왼쪽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 있다. 한국과 중국의 오방 사상에서 정중앙에는 통치자가 위치한다.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 이때 해가 떠오르는 동쪽이 왼쪽이 된다.
동쪽에는 상위계급인 문반이 위치해 있고, 그 맞은편에는 하위계급인 무반이 줄을 서게 되어 있다. 좌는 동쪽이자 나무(木) 즉 생산을 하는 곳으로 국가의 기틀을 잡는 곳이고, 우는 서쪽이자 쇠붙이 금(金)으로 통치를 강화하는 곳이다. 당연히 무인이 문인들을 대할 때에 스스로를 소인이라고 할 정도로 서열화되어 있었다. 동쪽을 숭상하는 근본사상을 유지하다 보니 일반 용법과 다르게 좌의정 우의정의 서열이 좌우의 서열과 달라진 것 뿐이다.
근대화가 되면서 좌우 차별은 제도화되고 더 강해졌다. 왼손잡이는 집안에서도 타박을 받고 매를 맞기도 했으며 학교에서는 그 훈육의 정도가 심했다. 군대에서도 식사간에 타인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얼차려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전세계적 평균 10%에 달하는 왼손잡이들이 한국에서는 꼭꼭 숨거나 양손잡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1995년 왼손잡이들의 가슴 속 응어리와 한을 풀어주는 노래가 나왔다. 이적과 김진표가 ‘패닉’으로 데뷔하면서 부른 ‘왼손잡이’의 가사를 보자.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나/ 너라도 날 보고 한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너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난 왼손잡이야 나나나 나나나 난 왼손잡이야 나나나 나나나”
그런데 이 노랫말은 왼손잡이 커밍아웃보다 더 비장한 감이 있다. 이적은 훗날 “우릴 왼손잡이 정도로 봐주면 안되냐“는 성소수자의 말을 듣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노래가 나올 당시에는 왼손잡이 그대로 들었을 것이다. 2017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미셸 피크말의 ‘난 왼손잡이야, 그게 어때서?’라는 책을 인권 도서로 추천하기도 했다. 점차 세상도 바뀌고 인식도 변했다.
왼손잡이가 역사적으로 복권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르네상스 시대부터 식사 에티켓 등이 발달하면서 차등화된 왼손의 복권은 당시로서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전쟁인 1차세계대전이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오른팔을 못쓰게 되자 강제화된 왼팔잡이, 왼손잡이가 많아졌다. 전쟁영웅들이 왼손잡이이다 보니 이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미디어나 학교에서 쏟아낼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학교에서 처음으로 허용했다. 미국도 1920년경에 동참했으며 다른 유럽국가도 1950~60년대에 이를 받아들였다. 세상을 바꾼 예술가, 유명한 스타, 국가지도자 중에서 왼손잡이가 다수 등장하면서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도 깨졌다. 일대일로 맞붙는 근접경기에서 왼손잡이 스타가 많이 나오고, 축구 등에서 양발잡이가 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도 달라졌다 ‘호모 레프트. 왼손잡이가 세상을 바꾼다’(데이비드 올먼)등 왼손잡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계에서 왼손잡이가 많기로는 네덜란드가 13.2%로 1위이며 그 다음 미국(13.10%) 캐나다(12.80%)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덴마크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순서이다. 다양성과 창의성, 다름을 인정하는 국가일수록 왼손잡이의 비율이 자연 그대로에 일치하거나 이를 웃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3.50%에 불과하고 통계가 잡히지 않는 북한은 그보다 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제식훈련을 하고 군대에서 10년간을 복무하는 사회 구조상 왼손잡이가 설 땅이 별로 없다고 이탈 주민들이 얘기한다. 오른손으로는 식사, 왼손으로는 용변의 문화를 가진 힌두교가 강한 인도는 5.2%이다.
우리나라의 공식통계는 없지만 한국갤럽 조사로는 2002년 성인의 4%가, 2013년에는 5%가 왼손잡이라고 밝혔다(면접조사 휴대전화 RDD). 그런데 20대에서는 8%이다. 젊을수록 유럽 국가에 근접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별화 서열구조 서열의식은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어 온 속도에 비해 더디게 쇠퇴하고 있다.
손의 민주화가 그 사회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척도는 아니지만 왼손 오른손의 서열이 타파되기를 기대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오른손잡이 문화의 결과물인데 왼손잡이를 위한 다양한 상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요즘 바른 이름을 지어주자는 운동이 있는데 차제에 옳다, 그르다는 어원을 가진 오른쪽 왼쪽 대신에 다른 단어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